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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수태 (충남대학교)
저널정보
한국목간학회 목간과문자 목간과문자 제8호
발행연도
2011.12
수록면
45 - 70 (2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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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포항 중성리신라비를 통해서 마립간 시기 신라의 지방통치와 비의 건립연대를 새롭게 알아본 것이다.
중성리신라비에서는 마립간 시기 신라의 지방통치와 관련하여 소송과 관련된 판결을 집행하기 위해서 지방에 파견된 사인이 나오고 있다. 도사와 함께 금석문에서 확인되는 또 다른 지방관이라고 할 수 있다. 이때 문제가 되는 것은 사인과 도사와의 관계이다. 기존의 연구에서는 도사와 사인을 서로 구별하여 파악하지 않았다. 그러나 처음에는 사인과 도사는 관계는 서로 밀접한 것으로, 사인이 도사로 분화되어 간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다시 말해서 처음에는 중앙에서 파견된 사인이 지방과 관련된 여러 일을 한꺼번에 담당하다가, 도사 등의 지방관이 새롭게 만들어지면서 그 역할을 분담하게 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중성리신라비에서 사인은 지방통치와 관련된 전체적인 일을 담당하였으며, 도사는 이러한 사인을, 지방에 있는 촌락의 유력자들은 다시 도사를 도와주는 관계였다고 하겠다.
사인과 도사에 대한 이러한 검토는 중성리신라비의 건립연대에 대해서도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441년설과 501년설의 두 견해 가운데 일반적으로 501년설이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441년설에서 제기한 여러 문제들은 501년설에 대한 새로운 이해가 필요함을 보여준다. 501년설에서 주된 근거의 하나로 제시한 도사와 관련된 부분에서이다. 중성리신라비와 냉수리신라비에 보이는 도사의 공통성이 주목되었지만, 서로 상당한 차이가 나타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중성리신라비는 사인이 도사보다 지방통치에 보다 중요한 역할을 하였던 것을 나타내주고 있는데, 이와 달리 냉수리 신라비는 사인의 성격이 변화되고 도사가 보다 비중을 차지하는 양상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로서는 501년설보다는 441년설이 오히려 더 유력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使人의 이해
Ⅲ. 道使의 의미
Ⅳ. 마을의 성격
Ⅴ. 비의 건립연대
Ⅵ. 맺음말
참고문헌
〈日文要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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