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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백미숙 (서울대학교)
저널정보
한국언론정보학회 한국언론정보학보 한국언론정보학보 통권 60호
발행연도
2012.11
수록면
125 - 149 (25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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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제작현장의 경험을 중심으로 1970년대 KBS 교양 피디의 직무 내용과 직업정체성 형성 과정을 탐색했다. 1970년대 텔레비전 피디는 경제적으로나 사회문화적으로 선망받는 직업은 아니었다. 오랫동안 편성과 영화의 하부로 남아있던 교양은 흔히 정책 계몽 프로그램의 정치적 수요, 그리고 새로운 기술 도입으로 70년대 중반부터 활성화된 것으로 서술되어 왔다. 그러나 이 연구는 모든 변화의 흐름에서 실천적 주체는 교양 피디임을 주장하고 있다. 교양 피디들은 영화 피디들의 필름 다큐멘터리 제작을 보조하며 스스로를 전문가로 훈련했고, 필름으로부터 마그네틱테이프 레코더 시대로의 전환 과정에서 교양을 특화된 전문 영역으로 독립시켜 제작의 주체로 등장했다. 척박한 제작환경에서 ‘잔뼈가 굵어가며’ 키워왔던 “프로그램을 만드는 DNA와 정신”은 교양 피디들이 직무 전문성을 키우고 자기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었던 가장 큰 힘이었다. 그러나 70년대 교양 피디들은 압도적 국가의 헤게모니 안에서 기술과 제작의 ‘전문성’을 공급하는 도구적 위치를 벗어나기 어려웠다. 당대 한국 사회의 전 영역이 그러했듯이 피디집단 역시 체제가 부여한 역할을 수행할 수밖에 없었고, 프로그램을 더 잘 만들기 위한 노력과 경쟁이 유일한 자율적 실천이었다. 이러한 조건에서 KBS 교양 피디들은 공무원으로부터의 구별짓기와 상업방송과의 구별짓기라는 두 가지 전략으로 전문 방송인으로서 직업 정체성을 형성했다. 그러나 전문 직업인으로서의 윤리적 실천 규범은 개인의 도덕성 문제에 머물렀고, 방송의 공공적 책무는 상업방송과 대비한 소극적인 정당화에 그치고 있었다.

목차

1. 들어가는 말
2. 연구 관점과 연구방법 : 전문직주의와 구술사연구
3. 누가 어떻게 교양피디가 되었는가? : 진입경로, 사회적 위치, 그리고 ‘방송을 하러 온 사람들’
4. 편성계와 영화계의 교양 피디 : TV 교양피디와 필름 다큐멘터리 피디
5. ‘신기술’의 도입, 기구개편, 프로그램 제작 정신 : 교양 피디 ‘전문성’ 형성의 맹아
6. 한국방송공사로의 전환과 전근대적 관행의 지속 : 자율성과 공공성의 기억
7. 나가며 : 교양 피디의 전문성과 직업 정체성, 그리고 남아있는 역사의 평가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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