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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전호태 (울산대학교)
저널정보
부산경남사학회 역사와경계 역사와경계 제88집
발행연도
2013.9
수록면
1 - 41 (41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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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인 전체의 축제이기도 했던 동맹은 고구려의 음악과 놀이가 한꺼번에 펼쳐지는 장이었지만 그 구체적인 모습은 전하지 않는다. 다만 북과 나팔이 주로 연주되었을 국중대회 에서의 음악이 중국 한(漢)에서 보낸 고취기인들의 활동과 맞닿아 고구려 초기 고취악 발전의 바탕이 되었음은 확실하다.
4세기 초 고구려가 남쪽의 낙랑을 병합한 뒤 제작된 평양권 고분벽화에 행렬고취악이 빈번히 묘사된 것은 고구려가 고취악이 매우 발달했던 낙랑을 영역화하면서 나타난 지역문화권적 현상이라고 하겠다. 4세기 중엽 고구려 고취악의 현황은 안악3호분 대행렬도의 고취악대를 통해 파악할 수 있다.
중국 위 · 진과의 교류가 본격화 하는 과정에 전해진 완함(阮咸)은 고구려 관현악이 독자적인 갈래를 형성하는 데에 도움을 준 것으로 보인다. 북중국이 5호16국시대로 접어들면서 동방에 전파된 불교는 5세기 전반까지 고구려의 음악과 놀이문화에 서역에서 유래한 악기, 춤, 노래, 놀이 등을 더하게 하였다. 강국(康國)에서 유래한 호선무(胡旋舞)가 고구려의 춤으로 소화되고 알려지게 된 것도 이런 과정을 통해서였을 것이다.
고구려는 고유의 문화에 중국의 한 문화와 서역문화의 산물을 잇달아 더하면서 5세기에 이르러 개성이 있으면서도 국제성이 짙은 문화를 창출해 내는 데에 어느 정도 성공하였다. 높은 보편성이 담긴 5세기 고구려의 음악과 놀이문화도 이러한 문화적 흐름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음악 및 놀이문화 자료
Ⅲ. 자료의 분석과 재구성
Ⅳ. 사회 변화와 음악·놀이문화
Ⅴ.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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