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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윤상열 (한림대학교)
저널정보
고구려발해학회 고구려발해연구 高句麗渤海硏究 第48輯
발행연도
2014.3
수록면
41 - 76 (3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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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존 사료상 고구려 전기 신성관념의 구성요소는 건국설화와 廟祠儀禮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건국설화를 통해 고구려 신성관념의 기원을 추적해 본 결과, 고씨와 해씨 왕계의 연속성은 보장되었으며 그 연장선상에서 대무신왕 치세에 주몽시조의식이 성립되었음을 확인했다. 따라서 고구려의 건국설화의 기본 골격 역시 대무신왕 대에 형성되었을 여지가 크다.
묘사의례는 시조묘, 기타 여러 묘사제도, 그리고 10월 제전 등으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고구려 전기의 시조묘 친사기사를 분석해 보면 모두 다 정권이나 나라의 신성성 내지 정통성을 고양하여 민심수습을 하고자 하는 차원에서 이루어졌다는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신묘’는 유화, ‘태후묘’는 태조왕의 母后인 부여태후가 그 주인공이다. 고구려에 각 태후마다 사당이 건립되었는지의 여부는 알 수 없으나 신격화된 시조묘나 신묘와는 달리 태후묘는 그러한 혼적이 없으므로 격이 상대적으로 낮았다고 볼 수 있다. 시조묘 자체는 종묘에 포함되었을 가능성이 다분하고, 고구려에서의 영성과 사직의 구체적인 대상은 始祖母 ‘유화’를 가리키는 것이다. 종묘와 더불어 ‘영성사직’은 王母 유화를 치제하는 신묘의 형태로 王都에 설치되었고, 고구려 건국설화가 정립된 대무신왕 대에 그 제도가 완비되었다고 보는 것이 합당하다.
10월 제전은 동맹제와 수신제로 大別되는데, ‘東盟祭’는 ‘東明祭’가 올바른 표현이고 ‘동명=주몽’ 인식은 이미 『삼국지』 단계의 고구려인들에게 존재했으며 공식적인 칭호가 아닌 제전에 적합한 신화적인 칭호였음을 확인했다. 수신제 역시 동명제와 마찬가지로 대무신왕 대에 건국설화의 정립과 아울러 여러 祀典이 정비되면서 국가적으로 제도화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수신제에서 "하백’보다 ‘유화’가 主神으로 숭앙되었던 이유는 전통적인 모계신앙의 강세와 시조와의 보다 직접적 관련성을 바탕으로 보다 포괄적인 성격을 갖추고 있는 始祖母가 더 적합했기 때문이라 추정된다.
여러 국가적 神聖化 정책이 제도적으로 확립됨에 따라 왕실은 하늘과 일체화되는 의식을 획득하게 되었고, 제천의례에도 반영되었다. 서기 3세기 당시 고구려왕의 위상은 중국 사서에 나타나는 ‘단우’라는 칭호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게다가 서기 3세기 중후반 王土에 직접적으로 귀속된 公民은 國土의 구성원으로서 당연히 ‘하늘과 동일시되는 天孫이 세운 나라’라는 왕실의 신성관념에 직접적으로 포함되었다. 그 결과, 4세기 중후반 유교와 불교라는 외래사상이 고구려에 전래되어 공인될 무렵에는 이미 일개 왕실에 범위를 둔 ‘天孫族 의식’을 초월한 ‘天孫國 의식’이 정착되었을 것이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건국설화의 정립
Ⅲ. 국가적 신앙체계의 양상
Ⅳ. 天孫國 의식의 발현
Ⅴ.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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