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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영두 (국사편찬위원회)
저널정보
한국사학회 사학연구 사학연구 제98호
발행연도
2010.6
수록면
1 - 39 (39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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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조선 후기 사육신을 복권하고 추존하는 과정에서 사육신에 대한 세조의 인식에 대한 담론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으며, 그 변화가 복권과 추존의 과정에서 어떠한 역할을 수행하였는가를 고찰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사육신의 복권과 추존 과정이 공식적으로 추진되기 이전, 이를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 세조가 사육신을 비롯한 단종의 옹호자들을 내심 충신으로 여겼다는 담론이 형성되었다. 담론의 내용은 크게 다음과 같은 세가지 근거로 구성되었다. 첫째, 세조가 사육신에 대해 ‘당대에는 난신이나 후세에는 충신’이라고 했다. 둘째, 세조가 공주 동학사에 거둥하여 단종과 사육신 등을 위한 제사를 설행(設行)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셋째, 세조가 지어 세자에게 내린 『훈사(訓辭)』의 서문 내용 가운데, ‘나는 어려움을 당했으나 너는 태평함을 만날 것이다.’ 한 것은 바로 사육신 등을 역적으로 몰아 죽인 처분을 그대로 따르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이러한 담론은 사대부들에게 있어 이미 보편화된 ‘사육신=충신’ 관념이 조선 후기에 국가적으로 공인되는 과정에서, 세조 정권의 정통성과 부딪히면서 일으키는 모순을 해소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었다. 그렇기에 이러한 주장은 확실한 기록이나 역사적 근거에 기반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기존에 이미 형성되었던 ‘사육신’ 기억에 이어진 논리적 유추의 결과로 구성된 관념이었다. 이를 위해 단편적인 기록이나 전승을 확대 해석하였다. 당시 사람들에게 있어 그 이야기가 과연 사실인지, 또는 이러한 주장의 근거가 얼마나 신빙성 있는 것인지 따지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었다.
이러한 작업이 성공적으로 수행된 결과, 사대부들의 ‘사육신’에 대한 기억은 수정, 보완되지 않을 수 없었는데, 세조의 사육신 인식에 대한 담론이 그 기억의 구조 속에 추가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기억은 국왕과 사대부가 모두 만족하는 국가의 공식적인 기억으로서 권위에 걸맞는 지위를 획득하게 되었다.

목차

요약
머리말
Ⅰ. 세조의 사육신 인식에 대한 담론
Ⅱ. 단종충신 복권 논의와 세조의 사육신 인식 담론의 변화
맺음말
Abstract

참고문헌 (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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