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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박용국 (경상대학교)
저널정보
신라사학회 신라사학보 신라사학보 제20호
발행연도
2010.12
수록면
219 - 252 (3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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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蓮池寺 鑄鐘佛事의 背景과 性格을 구명하는 데에 목적을 두었다. 아울러 연지사종 鑄成의 지역사적 의미를 담아내고자 했다. 833년에 주성된 연지사종은 1593년에 7월 倭軍에 의해 일본으로 약탈되었다. 그동안 연지사종은 진주지역의 인간들에게 사회ㆍ문화ㆍ정치적 경험을 공유하게 하였던 문화유산이었다.
연지사는 중앙지배층에 의해서 불교 통제의 중심 사찰이자 지방지배의 중심 사찰로서 일정하게 활용되었으며, 거기에서 행해진 주종불사도 그와 관련이 깊은 정치ㆍ사회적 목적에서 나왔던 것으로 정치적 성격을 지닌 것이었다.
菁州 州治의 在地勢力은 연지사의 주종불사를 주도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청주 주치는 金憲昌의 반란에 가담하였던 곳이고, 연지사도 僧官制 관련 사찰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國人이 마음대로 財貨와 田地를 佛寺에 施主하는 것을 금지하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연지사의 주종불사는 국가가 주도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실제 물적 제공은 청주 재지세력(향촌주 등)과 그들 지배하의 공동체(州治)가 자발성을 가장한 施主의 형태였다. 주종불사의 비용은 청주 주치에서 나왔으며, 이를 실제 주도했던 세력은 검헌창의 난 이후 세력을 유지한 族團으로서 나말여초 진주지역의 호족세력으로 성장하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蓮池寺鐘은 언제 掠奪되었나
Ⅲ. 鑄鐘佛事의 政治ㆍ社會的 背景
Ⅳ. 鑄鐘佛事의 主導勢力과 그 性格
Ⅴ.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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