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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채미하 (경희대학교)
저널정보
신라사학회 신라사학보 신라사학보 제23호
발행연도
2011.12
수록면
75 - 111 (37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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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에서는 우선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기록에 보이는 6촌을 비교ㆍ검토하였는데, 두 史書에 보이는 6촌과 관련된 기록은 서로 차이가 있으며, 《삼국유사》 내용에서는 착오도 발견되었다. 하지만 《삼국유사》에는 《삼국사기》에 보이지 않는 내용도 반영되어 있었다. 그리고 6촌장의 초강지와 6촌의 촌명을 통해 무산대수촌을 제외한 5촌의 위치가 알천 북쪽내지는 알천과 가까운 지역이라고 하였다.
다음으로 원래의 6촌 사회는 조선유민들에 의해 형성되었지만 6촌 안에는 다양한 세력들이 존재하게 되었고, 6촌 세력의 시조는 天에서 峰 또는 山과 연결되어 그들의 시조신화가 변하였다고 하였다. 그리고 선도산의 서술성모설화는 신라 중고기를 전후한 시기에 혁거세ㆍ알영세력과 6촌 세력과의 관계가 새롭게 규정된 것이라고 하였다.
한편 6촌 사회는 시조의 초강지나 그 지역의 산들을 신성시하였고 그곳에 제사지내면서 그들의 공동체를 공고히 하였다고 보았다. 그렇지만 신라는 이들 산악을 신라 국가제사에 편제하였는데, 이것은 각 지역이 신라의 지배에 들어갔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하였다. 하지만 다른 5촌과는 달리 알천양산촌(양부) 지역의 산악은 신라 국가제사에 편제되지 않았다. 이것은 알천양산촌(양부)이 다른 5촌(부)과는 그 위상이 달랐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하였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6村과 6村長의 初降地
Ⅲ. 6촌의 변화
Ⅳ. 山嶽祭祀로의 편제와 그 의미
Ⅴ.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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