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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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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정보
동국대학교 불교문화연구원 불교학보 불교학보 제60집
발행연도
2011.12
수록면
173 - 195 (23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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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송대 간화선은 오조법연과 원오극근에게서부터 맹아가 트기 시작하여 대혜 종고에 이르러 대성하게 되었고, 그 후 원대에 들어와서는 고봉원묘와 그의 제자 중봉명본의 활약에 의하여 再起되었다. 한국선, 즉 한국의 간화선은 고려시대의 지눌과 혜심 이후 그 뿌리를 내리고, 그 유행은 원대 고봉원묘와중봉명본에 의하여 이루어졌다. 그 후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고봉원묘의 『선요』를 애독하기 시작하면서 『선요』가 조선시대에 간화선의 표준이 되었고, 특히 휴정의 『선가귀감』은 『선요』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로 추측된다. 그 다음 조선말, 대한제국 시대에는 경허 등의 활약이 있었으며, 현대에 접어들어서는 특히 경봉이나 성철 등의 활약에 의하여 간화선이 일반 재가자나 납자들에게 보편화되었다고 생각한다. 대혜가 간화선을 주장하게 된 근본 이유는 문자선의 병폐와 무사안일선의 병폐를 바로 잡고, 공안 본래의 의미를 되찾고자 하는 데 있다. 양자의 병폐는 둘 다 깨달음을 소홀히 하는데 있었다. 그래서 대혜는 공안이라는 도구를 들고 나와 자기의 마음바탕을비추어 보는 수단으로 삼은 것이다. 이 공안은 간화선에 있어서 가장 핵심이 되는 요소로서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이지만 이것을 사량분별로써 이해하려고 해서는 절대 안 된다고 강조한다. 즉 단지 의심을 불러일으키는 도구일 뿐이라는 말이다. 경봉선사가 보는 화두란 「학인이 법을 묻는데 格外로서 답을 한 것」이라고 하기 때문에 이는 공안의 본래 의미를 말한 것으로서 원오가 말하는 「문을 두드리는 기와조각」이라는 의미라든가 대혜가 말하는 「의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도구」라는 의미와는 다르게 이해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는 또 「화두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고 하기 때문에 화두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고, 그때그때의 상황에 따라 시설된 방편이라고 보고 있는 것 같다. 다음 경봉은 무자공안을 포함하여 화두를 참구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그저 간단하게 「무자를 계속 생각하면 된다」고 할 뿐 고봉화상과 같이 구체적으로 믿음, 분심, 의심의 삼자를 체용관계로 연결시켜서 설명하거나그 상호관계를 말하지 않고, 직접 수도하는 자의 입장에 서서 설명하고 있다. 경봉도 고봉과 마찬가지로 이 셋은 솥발(鼎足)과 같아서 그 중 하나만 없어도 참선을 할 수 없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경봉이 화두를 참구함에 있어서 주의해야 할 사항을 언급하고 있는데 이는 대혜 『서장』의 이른바 「간화10종병」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이기 때문에 더 이상 할말이 없다. 경봉선사의 모든 법어집을 읽고 느낀 점에 의거하여 필자의 견해를 피력하면, 물론 심중의 주관적인 경험을 토대로 한 것이지만 지금 한국의 대다수의 납자들은 경봉선사의 가르침과 크게 다르지 않게 간화선을 실참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현재의 이러한 결과를 가져오기까지의 前史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한국 간화선의 원류는 멀리 송원대에서부터 비롯되고 있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우리나라에 들어와서는 고려시대에 간화선의 교과서와 같은 역할을 한 보조지눌의 『간화결의론』의 영향과 조선시대에 고봉원묘선의 『선요』을 많은 사람들이 애독한 그 영향이 줄곧 이어져 현대에 이르고 있다고 판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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