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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장병진 (연세대학교)
저널정보
고구려발해학회 고구려발해연구 高句麗渤海硏究 第52輯
발행연도
2015.7
수록면
273 - 296 (2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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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백제 유민의 묘지는 사료가 부족한 한국고대사 연구에 새로운 활로를 제공하고 있다. 최근 중국 西安에서 고구려 유민의 새로운 묘지 자료가 출토되어 학계에 소개되었다. 묘주 ‘남단덕’은 기존 사료에서는 알려진 바 없는 인물이다. 중국의 연구자에 의해 묘지의 존재와 함께 내용에 대한 간단한 소개가 이루어졌으나, 간체자로 판독문이 제시되었고, 전문에 대한 역주가 이루어지지 않아 연구에 활용하는데 일정한 한계가 있었다. 이에 본고를 통해 「南單德墓誌」 전체의 판독과 역주를 제시하고, 지문의 내용과 관련한 연구의 쟁점을 짚어보았다.
남단덕은 고구려 유민 3세대로 699년 平壤에서 태어나 776년 長安에서 78세의 일기로 사망하였다. 선대의 구체적인 입당 경위는 드러나지 않지만, 입당 이전에 고구려에서 상당한 지위를 갖추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집안 대대로 변경의 武將으로 활동하였고, 祖父 狄은 磨米州 都督, 父 于는 歸州 刺史를 역임하였다. 안사의 난 당시에 단덕은 당 조정에 귀항하여, 반란이 평정되는 과정에서 일정한 공을 인정받아 饒陽郡王의 지위에 오르고 장안에 籍을 두고 살게 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무엇보다 지문에서 주목되는 것은 묘주 가문의 출신, 그리고 고구려 멸망 이후 안동도호부 지역에 활동하면서 조부가 도호부, 기미주 운영에 참여한 사실이다. 남단덕의 집안은 본래 중국계(漢人)였을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데, 고구려에서의 이들의 지위와 고구려 멸망 이후 안동도호부에서의 활동과 관련하여 기존 문헌사료의 기록과 관련한 구체적인 논의가 필요한 부분이다. 또한 묘주가 평양에서 출생했다는 기록 역시 추가적인 검토를 요구하는 대목이다.
물론 묘지 자료가 갖는 성격을 유의하면서 접근해야 하겠지만, 새로운 자료가 추가되면서 기존 연구의 시각 속에서 새로운 자료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 다른 한편으로는 기존의 이해 방식에 문제는 없는 것인지 구체적인 논의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지문의 판독 및 역주
Ⅲ. 지문의 내용 검토 및 연구쟁점
Ⅳ.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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