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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박경하 (중앙대학교)
저널정보
중앙대학교 문화콘텐츠기술연구원 다문화콘텐츠연구 다문화콘텐츠연구 제 19집
발행연도
2015.8
수록면
45 - 76 (32page)
DOI
10.15400/mccs.2015.08.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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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忠善(沙也可)은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의 선봉장으로 참전하였으나 곧 투항하여 일본군을 상대로 여러 차례 큰 공을 세워 선조로부터 김해 김씨 성과 충선이라는 이름을 하사받고 자헌대부에 올랐다. 가훈?향약 등을 마련하여 향리교화에 힘썼으며, 『모하당문집』을 남겼다.
조선에 투항한 金忠善(沙也可)은 조선의 입장에서는 충신이자 영웅이었지만 일본의 입장에서는 배신자, 매국노가 될 수밖에 없었다. 일제강점기 『慕夏堂文集』(1915)이 조선연구회에서 간행되었을 당시에도 일본학자들은 이와 같은 매국노가 동포 중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유감의 극이라고 할 만큼 증오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고, 김충선(사가야)의 일본에서의 기록이 불명확한 점을 들어 한국에서 조작해 낸 가공의 인물이라는 주장도 있었다. 그러나 1970년대 일본의 문호로 추앙받는 소설가 시바 료타로의 기행문이 출간되면서 분위기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 후 김충선의 생애는 역사문화콘텐츠로 재현되어 일본과 한국에서 김충선을 주제로 한 역사소설들이 출간되기 시작했고, 일본과 한국의 방송에서도 김충선 관련 다큐멘터리를 방영하면서 재조명하는 계기가 되었다. 한일 양국의 교과서에도 김충선이 소개되었으며, 심지어 만화로 출간되기도 했다. 이 후 일본인 관광객들이 녹동서원과 한일우호관을 찾기 시작하면서 이곳은 새로운 한일관계를 정립하는 특별한 장소가 되었다.
사야가는 일본인으로 태어나 22년을 살았으며, 김충선이 되어 제2의 조국인 조선을 위하여 50년을 살다가 1642년 72세의 나이로 삶을 마감했다. 그리고 해마다 수만 명의 한국인과 일본인들이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우록동을 찾고 있으며, 한국과 일본에는 사야카 연구단체가 설립되었다. 그는 임진왜란 이후 400여 년 만에 평화주의자로 부활하고 있다. 결국 金忠善(沙也可)이 목숨을 걸고 싸운 것은 조선도 일본도 아니었다. 그것은 문명의 가치를 파괴하는 침략자들이었다. 그는 오늘날 시공을 초월해 한국과 일본이 과거의 갈등과 증오의 역사를 씻고 지향해야 할 바람직한 관계상을 보여주는 하나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것이다.

목차

Abstract
Ⅰ. 머리말
Ⅱ. 귀화인 金忠善(沙也可)의 생애
Ⅲ. 金忠善(沙也可): 역사문화콘텐츠로의 재현 사례
Ⅳ. 맺음말
Bibliography
국문초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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