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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태훈 (서울대)
저널정보
한일관계사학회 한일관계사연구 한일관계사연구 제55집
발행연도
2016.12
수록면
113 - 154 (42page)
DOI
10.18496/kjhr.2016.12.55.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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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인조대 전반기(1623~1636년) 정권 초반의 불안정과 급변하는 국제정세에 대응하며 전개했던 대일정책/대일관계를 검토한 것이다.
인조대의 대일정책은 광해군대 공리적 · 유화적 대일정책을 거의 수정없이 계승하면서 시작되었다. 불안정한 동아시아 정세 하에서 일정한 성과를 거두고 있던 광해군대의 대일정책상 노하우를 폐기하지 않고 활용함으로써, 대일관계는 비교적 안정적으로 유지되었다. 1624년 이괄의 난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조선 정부가 취했던 일본측/항왜에 대한 慰撫 · 진정책은 공리적 · 유화적 대일정책의 전형적 일면이다.
조선 정부의 대일정책 기조가 유효했던 점 외에도, 일본측의 협조적 태도 역시 대내외적 위기 속에서 대일관계가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었던 요인이다. 1627년 정묘호란 당시 대마도주와 柳川調興의 무기류 헌상 판매를 통한 밀착 시도는 그 대표적 사례이다.
인조대 전반기 대일관계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장면은 1629년 玄方의 상경이다. 이와 관련하여 본고에서 주목한 부분은 조선 정부의 대응책 논의 과정이다. 이 시기 조선 정부는, 광해군대에 명의 존재를 부각시키며 집요한 상경 요구를 막아냈던 것과 달리, 별다른 외교적 명분 · 논리를 창출하여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왜사 상경을 둘러싼 논의가 ‘인조vs신료’의 구도로 전개되었다는 점도 특징적인데, 이러한 대립 구도는 병자호란 이후 대일정책 논의 과정에서 재현된다는 점에서도 주목된다.

목차

국문초록
1. 머리말
2. 仁祖反正이후 功利的 · 宥和的대일정책 기조
3. 정묘호란 이후 대일관계와 玄方의 상경
4.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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