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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종섭 (서울시립대학교)
저널정보
서울시립대학교 서울학연구소 서울학연구 서울학연구 제60호
발행연도
2015.8
수록면
93 - 127 (35page)
DOI
10.17647/jss.2015.08.60.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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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代 科擧는 동아시아의 首都 집중화를 이해하는데 하나의 단서를 제공한다. 과거는 공정한 시험을 통한 우수한 인재를 선발하는 제도이면서 지방에서 중앙으로 향하는 각 단계별 시험을 통과해야 하는 절차를 지닌 제도이기 때문이다. 高祖가 향촌조직을 정비하고 鄕마다 학교를 세움으로써 과거의 출발점은 마련되었다. 縣에는 縣學이, 州에는 州學이, 京師에는 國子學이 세워져 단계별 수학도 가능하였다. 官學에서 수학하고 있는 학생을 生徒라 불렀으며, 이들은 일정한 자격을 획득한 후 경사에서 치르는 省試에 응거할 수 있었다. 또한 私學도 점차 나타나기 시작하였으며, 이곳에 수학한 사람들은 州에서 주관하는 鄕試에 응해야 했다. 향시에 합격하면 鄕貢이라 불렸으며, 省試에 응거할 수 있었다.
성시에 應擧하는 인원은 매해 대략 3,000명 전후로 추산되며, 이들 가운데 進士를 포함하여 120여 명 정도가 급제하였다. 성시에 낙제한 사람들은 다음 성시에 곧바로 응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다시 성시에 응거할 수 있는 자격을 얻어야만 했다. 즉 성시에 급제한 일부를 제외하면 다수의 사람들은 다시 지방으로 내려갔다가 성시에 응할 수 있는 文解를 발급받아 경사로 올라오는 일을 반복했다.
성시 응거 행렬은 평화로운 시절만이 아니라 唐朝에 반기를 든 지역에서도, 전쟁이 발발한 상황에서도 끊이지 않았다. 安史의 난 이후 당조의 명령을 받들지 않는 ‘反側之地’의 藩鎭에서도 성시 행렬은 이어졌고, 黃巢의 군대가 長安을 위협 하던 시기에도 과거는 시행되었다. 이런 성시 행렬이 가능했던 것은 수동적인 薦擧와 달리 그들의 자발성 때문이었다. 과거는 타의에 의한 추천이 아니라 본인의 의지에 의해서 참여하는 관리선발제도였기 때문이다.
과거는 작은 구심점에서 점차 큰 구심점으로 나아가는 중앙집중형 사회를 형성시키는데 큰 영향을 주었으며, 이런 구조 속에 사람들은 자연히 이런 사회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바로 그 정점에 오늘날 수도와 비슷한 개념의 京師가 자리하고 있으므로 과거는 전근대 동아시아 수도의 특징인 집중화를 더욱 강화시키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었다. 따라서 수도의 집중화는 수도라면 당연히 그러해야 된다는 것이 아니라 전근대 동아시아 역사의 기반에서 형성된 중요한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목차

Ⅰ. 머리말
Ⅱ. 鄕村에서 縣·州로 가는 길
Ⅲ. 縣·州에서 京師로 가는 길
Ⅳ. 省試 행렬의 순환
Ⅴ. 科擧와 京師 집중화
Ⅵ.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국문초록

참고문헌 (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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