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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조영광 (국사편찬위원회)
저널정보
동북아역사재단 동북아역사논총 동북아역사논총 제49호
발행연도
2015.9
수록면
47 - 86 (4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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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개토왕비에 보이는 고구려인의 천하관, 그리고 당시의 대외 관계에 대해서 지금까지 적지 않은 연구 성과들이 나왔다. 천하관은 당시 고구려인들이 자신과 주변 세계를 어떠한 관점에서 이해하고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비문은 고구려인의 천하관을 이해하는 데 가장 좋은 자료이다. 지금까지의 연구를 통해 고구려는 유교적, 중국 중심의 천하관에 사로잡혀 있지 않고 자신들만의 독특한 세계관을 통해 주변을 인식하였음이 밝혀졌다.
고구려인들의 이러한 자국 중심의 천하관은 비문에 보이는 주몽을 시조로 한 왕실의 신성성과 초기 왕 계보를 통해서도 확인이 가능하다. 왕실 교체의 시점, 초기 왕계의 복원과 확립 과정에 대한 연구들이 활발히 이루어졌다. 지금까지의 연구에 의하면 고구려 계루부 왕실의 등장은 주몽과 함께, 초기 왕계는 『삼국사기』와 비문에 전하는 내용이 당시 고구려인들이 인식한 초기 왕계와 거의 일치하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고구려는 자신만의 세계관을 확립하고 이를 바탕으로 활발한 대외 정복 활동을 전개하였다. 비문에 보이는 광개토왕 당시의 대외 관계는 백제를 중심으로 한 대남방 관계 기사가 주를 이루고 있지만 거란 · 왜 · 신라 · 가야 등 당시 동아시아의 다양한 국가와 종족들이 언급되고 있고, 후연과 관련된 부분도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
비문에 대한 연구 초기는 일본 식민사학자들이 소위 임나일본부를 합리화하려는 의도로 신묘년조에 대한 연구를 활발히 전개하였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 비문변조설과 비문에 대한 역사적 재검토가 진행되며 신묘년조가 왜의 한반도 남부 지역 공략을 기록한 사실을 기록한 것이 아니라, 고구려가 역사적 기념물을 남김에 있어 자국 중심의 과장된 서술의 도구로 왜를 활용한 것으로 해석하는 데 의견이 합치되고 있다.
대외 관계를 둘러싼 비문의 많은 부분이 백제를 겨냥한 것이지만, 일부는 그 대상이 명확하지 않아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영락 17년조는 백제로 보는 견해와 후연으로 보는 견해가 대별되고 있으며, 영락 8년조는 숙신과 동예 지역으로 보는 주장이 각각 제기된 상황이다. 아울러 10년조의 가야 제국에 관한 문제도 다양하게 논의되었다.

목차

Ⅰ. 머리말
Ⅱ. 광개토왕비에 보이는 고구려 초기 왕계에 대한 연구 성과와 과제
Ⅲ. 광개토왕비에 보이는 고구려의 대외 전쟁에 대한 연구 성과와 과제
Ⅳ. 고구려의 독자적 천하관에 대한 연구 성과와 과제
Ⅴ. 맺음말
참고문헌
국문초록
ABSTRACT

참고문헌 (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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