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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신광희 (동국대학교)
저널정보
동국대학교 불교문화연구원 불교학보 불교학보 제72집
발행연도
2015.9
수록면
293 - 316 (24page)
DOI
10.18587/bh.2015.09.72.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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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육나한(十六羅漢)은 석가모니에게서 미륵이 올 때까지 열반에 들지 말고 불법을 수호하고 중생을 이롭게 하라는 수기를 받은 열여섯 명의 불제자들이다. 이들의 모습을 그린 십육나한도(十六羅漢圖)는 조선후기에 특히 성행하였는데, 상주 남장사(南長寺) <십육나한도>는 초기 작품군인 18세기의 사례 중 하나이다.
남장사 <십육나한도>는 1790년 남장사 승려들의 발원으로 <지장시왕도>와 함께 제작되어 영산전에 봉안되었으며 서울 ? 경기에 주 근거지를 둔 화사 상겸(尙謙)과 경상권의 화사 영수(影修) 등이 함께 제작하였다. 이 그림은 18세기 다른 작품들이 대부분 명대(明代) 화보의 도상을 차용한 것과 달리, 17세기에서 18세기 전반까지 조선에서 활발히 제작된 십육나한 조각상의 도상과 당시 궁정에서 유행하기 시작한 책거리 도상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그려졌다. 또한 수화사의 이력을 지닌 영수와 상겸이 함께 그림을 그리는 과정에서 역할을 나누었는데, 도상은 상겸이 주도한 것으로 보이며 채색은 각기 화폭을 나누어 맡았다. 상겸은 당시 중앙인 서울 ? 경기에서 화업을 시작하였고 왕실불사에 동원되기도 했으며 충남 예산과 경북 상주지역에까지 초빙되어 불화를 그릴 정도로 기량이 뛰어났고 <십육나한도>를 그리기 2년 전인 1788년에는 남장사 <괘불화>를 주관하기도 했다. 그러한 인연으로 남장사 <십육나한도> 제작에 참여한 것으로 보이며 작업 과정에서 본인의 개성을 도상과 화풍 전반에 적극적으로 반영하였다. 영수 역시 그가 주도한 화폭에서 본인의 개성을 잘 드러냈으며 <십육나한도>와 함께 그려진 <지장시왕도>를 맡아 그렸다.
남장사 <십육나한도>는 새로운 도상을 적극적으로 모색하였고 한 작품에서 두 가지 화풍을 확인할 수 있으며 조선후기 수화사들의 협업 과정에서 역할 분화의 일면을 파악할 수 있는 사례로 그 가치가 매우 크다.

목차

한글요약
Ⅰ. 머리말
Ⅱ. 남장사 <십육나한도>의 개요
Ⅲ. 다양한 도상의 탐색과 수용
Ⅳ. 화사의 분업과 개성 표출
Ⅴ.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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