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질문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박형신 (남서울대학교)
저널정보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한국기독교와 역사 한국기독교와 역사 제43호
발행연도
2015.9
수록면
131 - 167 (37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질문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이 논문은 청말(淸末) 시기에 만주에 들어온 초기 유럽 개신교 선교부들이 마주해야 했던 정치, 사회적 현실에 대한 심화된 이해를 목표로 한다. 이를 위하여 만주의 지정학, 인구이동과 사회변동, 만주의 정체성 등에 대한 역사적 검토를 제공하고, 이런 현실들을 보유한 만주가 유럽 개신교 선교부와 조우했던 장면들을 묘사한다. 우선, 청말(淸末) 시기의 만주(滿洲)는 1860년 이후로 축소된 만주로서 당시 제국주의적 국제환경을 반영한다. 종족-민족적으로는, 퉁구스, 몽골족, 만주족, 한족과 같은 전통적인 그룹에 더하여 한인, 러시아인, 그리고 일본인들이 가세하였다. 1861년에는 영구(營口)가 서구열강에 개방됨으로 만주는 경제, 사회적으로 동아시아 및 세계의 체제와 밀접한 관계에로 들어간다. 청제국은 봉금정책을 통하여 만주를 보존하려 하였지만 실패하고 1881년에는 이를 전면적으로 개방하였다. 비옥한 만주의 낮은 인구밀도, 동아시아의 가뭄과 피폐한 경제, 러시아의 위협에 대항한 ‘이민실변’(移民實邊) 정책, 그리고 러시아인과 일본인들의 제국주의적 진출 등은 청말 시기 대규모 만주이민을 가져왔다. 이 시기에 만주지역을 가리키는 명칭으로는 만주, ‘동관(東關)’과 같은 용어가 사용되었으며, ‘동삼성(東三省)’과 ‘동북(東北)’ 같은 용어들은 중화민국과 현대중국 시기에 의도적으로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최근의 연구들은 만주족과 만주에 대한 좀더 적극적인 해석을 하는 가운데, 만주족의 특성의 부각시키고 만주를 다중적 정체성을 지닌 경계와 중간지대로 파악하기도 한다. 유럽 개신교 선교부는 영구항의 개방, 내지여행 및 선교의 자유라는 천진조약의 정치적 결과물 위에서 만주에 도래하였다. 1867년 이후에 들어온 잉글랜드장로교회, 아일랜드장로교회, 스코틀랜드연합장로교회, 그리고 덴마크루터교회 선교부들은 축소된 내만주(內滿洲)로서의 만주, 동관(東關)으로서의 만주, 조약법(條約法)의 허용치와 한계치, 유조변(柳條邊) 변문(邊門)이었던 고려문(高麗門)에서의 한인(韓人)선교, 가난하지만 개방적인 만주이민자들, 그리고 두 차례의 전쟁과 의화단운동과 같은 만주의 현실(現實) 속에서 새로운 선교의 방법을 모색하고 실천하였다.

목차

Ⅰ. 머리말
Ⅱ. 청말(淸末) 만주의 지정학(地政學)
Ⅲ. 만주를 향한 집단이민과 사회의 변동
Ⅳ. 청말 만주(滿洲)의 명칭과 정체성의 문제
Ⅴ. 유럽 개신교 선교부의 도래
Ⅵ. 맺음말
참고문헌
한글초록
Abstract

참고문헌 (0)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이 논문과 함께 이용한 논문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