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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홍이표 (메이지가쿠인대학)
저널정보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한국기독교와 역사 한국기독교와 역사 제43호
발행연도
2015.9
수록면
169 - 204 (3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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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내지(內地)’라는 개념에 집중하여 일제 치하, 특히 무단통치기(1910-1919)의 한국 기독교가 일본을 어떻게 인식해 갔는지를 규명하고자 하였다. ‘내지’라는 말은 ‘조선을 의미하는 보통명사’였지만, 강제병합 이후 ‘일본만을 의미하는 고유명사’가 되었다. 즉, ‘내지로서의 일본’을 일제하 기독교가 어떻게 수용하였는지, 동시에 ‘내지’의 반대 개념인 ‘외지(外地)’로 전락한 내지 상실의 자아’를 어떻게 내면화하였는지를 고찰함으로 당시 한국 기독교인들의 ‘일본 인식’을 규명하고자 하였다.
먼저 한국강제병합 이전 시기에 서구적 근대화를 선교 목적 달성의 중요한 수단과 통로로 인식했던 기독교는, 조선에 만연해 있던 배일 정서와 비교할 때, 메이지유신을 통해 먼저 근대화를 달성하여 서구적 면모를 갖춘 일본에 대해서, 반드시 알아야 하는 대상, 혹은 배워야 하는 대상으로 인식했다. 즉 ‘지일과 학일’의 일본 인식이 경계가 불분명한 채 교차하는 시기였다.
하지만 한국강제병합 이후 전개된 ‘무단통치 시기’(1910~19)는 ‘내지조선’이 자신의 고유한 ‘내지성’을 상실하고, ‘외지’로 전락한 직후의 시기를 의미한다. 동시에 ‘내지일본’이 새로운 ‘내지’로 교체된 자아 상실과 비아 강요의 충격적 상황이었다. 이처럼 안과 밖이 전복된 아노미 상황 하에서 한국 기독교는 항일의 성격을 강화해 갔다. 일본 정부는 일본조합교회의 ‘조선전도론’을 통한 한국 기독교의 ‘내지화’를 도모하였지만 결국 그 시도는 실패하였다. 그 이유는 1919년 2.8 독립선언 및 3.1독립운동을 둘러싼 일본 인식의 변화과정에 한국 기독교가 깊이 관여돼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3.1운동으로 종언을 고한 무단통치기의 한국 기독교는 ‘항일의 고양(高揚)’을 통해 ‘내지상실-외지화’라는 국권 피탈 현실을 극복하려던 시기라고 규정할 수 있다. 그러한 한국 기독교인의 항일 의식의 기반에는 새로운 고유명사로서 강요된 ‘내지=일본’이라는 개념에 대한 거부 및 저항 정신이 있었다.

목차

Ⅰ. 머리말
Ⅱ. 일제하 ‘내지’ 개념의 보급과 확대 과정
Ⅲ. 무단통치 시기 ‘내지’ 개념의 수용 양태 : 항일 의식의 고양과 좌절
Ⅳ. 맺음말
참고문헌
한글초록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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