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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오현수 (고려대학교)
저널정보
고려사학회 한국사학보 韓國史學報 제61호
발행연도
2015.11
수록면
47 - 76 (3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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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위략』에 기재된 ‘조선후’의 실체와 ‘2,000여 리’의 위치를 밝힌 것이다. 먼저 조선후국의 위치에 대해 살펴보았는데, 『위략』에 기재된 조선후국은 전국 연나라와 직접적 상호작용관계에 있어야 한다는 점을 주목하였다. 기원전 4~3세기 연장 진개가 고조선을 공격하기 이전에 연나라는 하북성 지역을 강역화하였는데, 이를 바탕으로 하여 연나라는 요서지역의 정치체와 직접적인 상호작용관계를 가질 수 있었다. 그런 반면에 고조선은 기원전 6세기 이후 심양 일대의 정가와자유형을 기반으로 하여 형성되어 있었다. 그러한 사정은 『염철론』벌공 편 연장 진개의 고조선 침략기사에서 연나라가 요수를 건너 고조선을 공격한 것으로 기재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알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연장 진개의 활약 이전에 연나라와 고조선은 각기 하북성과 요동지역에 근거하고 있었고, 이에 반해 요서지역은 양국의 공백지대였다. 그런데 『위략』 의 표현대로 하자면, 연나라와 조선후국은 서로 이웃한 국가여야 하기 때문에 조선후국은 요서지역에 기반한 정치집단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결국 연장 진개의 활약 이전인 기원전 4세기의 국제 정세는 하북성의 연나라, 요서의 조선후국, 요동의 조선이 병립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음으로 요서지역에 조선후국이 성립하게 된 계기에 대해서 살펴 보았다. 춘추시대 초기에 연나라의 북방에서 산융 집단이 연나라를 괴롭히자, 제나라가 산융을 정벌하게 되는 사건이 있었다. 당시 산융의 위치는 하북성의 북부지역에 있었는데, 제나라 환공의 공격으로 인해 산융 중에서 일부 집답은 요서지역으로 후퇴하였다. 그리하여 요서지역의 고조선사회는 큰 변화를 맞게 된다. 고조선의 수장집단을 포함한 일부 세력이 요동지역으로 건너가 정가와자유형 중심의 조선을 형성하고, 요서지역에는 새로이 융족 계열의 집단이 전입하여 선주하던 고조선 토착민과 융합과정을 거치면서 조선후국이 등장하게 된다. 결국 『위략』에 기재된 ‘取地二千餘里’에서 2천 여리의 영역에는 요서(조선후국)와 요동(준왕 계열의 조선) 지역이 포함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 요서지역의 정치체에 대해서 그것을 기록한 당시인의 인식차에 따라 달리 기록하고 있다. 그리하여 중국의 고대 문헌인 『위략』, 『산해경』『관자』, 『염철론』 은 이를 각기 조선후 · 맥국(발) · ‘동호의 연장선’으로 기록하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연장 진개의 침입으로 요령지역 사회의 변화상에 대해서도 살펴보았다. 연장 진개의 침입으로 인해 요서지역의 조선후국은 멸망하여 연나라에 완전히 포괄되었다. 그리고 요동지역 준왕 계열의 조선은 서북한 지역으로 이동하여 부왕~준왕으로 그 명맥을 유지하게 된다. 기타 요동지역의 토착사회는 고조선과의 교류가 단절되고, 연나라 요동군과 밀접한 교류관계를 맺게 된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목차

국문초록
1. 머리말
2. 朝鮮侯에 관한 주요 쟁점
3. 朝鮮侯國의 실체와 그 위치
4. ‘取地二千餘里’의 검토
참고문헌

참고문헌 (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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