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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성은 (대구한의대)
저널정보
서강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서강인문논총 西江人文論叢 第45輯
발행연도
2016.4
수록면
39 - 74 (3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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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해방 후 언론, 단체, 저작물에서 안용복에 대한 서술과 평가를 어떻게 해왔는가를 살펴보았다. 해방 후 안용복에 대한 언론의 조명과 평가는 일본의 독도도발과 궤적을 함께 했다. 안용복장군기념사업회가 조직되고 활동을 전개하면서 안용복은 장군으로 인식되고 호칭되기 시작했다. 이에 대해 학계 일부에서는 안용복 영웅화 경향에 대한 우려를 제기했다. 본 연구는 이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시작되었다.
일반인들에게 안용복은 안용복 장군이라는 호칭으로 널리 통용되고 있지만, 학계에서는 호패 기록에 근거해 안용복의 신분이 천민(사노)이라는 설이 우세하다. 안용복 관련 저작물 및 언론에서 그(의 활동)에 대한 평가는 장군이라는 호칭 이외에도 영웅, 호걸, 위인, 충신, 애국자, 공로자, 선구자, 민족의 은인, 의인, 민간외교가, 수호자, 파수꾼, 지킴이 등으로 다양하게 나타났다. 2005년부터 최근 10년간 언론에서는 안용복이 어민이며 평민이라는 점을 많이 강조했다. 안용복을 대표하고 지칭하는 수식어로 “평민 어민”과 함께 “민간외교가, 수호자, 파수꾼, 지킴이”라는 단어가 빈번하게 등장해 현실문제에 깨어있는 국민의식, 행동하는 시민의식을 촉구하는 논조를 띠었다.
그러나 문제는 “안용복 개인이 영토문제를 해결했다는 인식”에 있다. 17세기 말 울릉도 독도영유권 및 어업권에 대한 문제제기와 해결과정에서 안용복 개인의 활약이 독보적이고 영웅적이었음은 사실이다. 보완할 점으로 안용복의 2차 도일은 동지들과 함께였다는 점, 울릉도 독도 영유권 및 어업권 문제 해결에 있어서 대일 교섭과 사후 관리는 결국 조선 조정에 의한 것이었음을 적시할 필요가 있다. 개인의 역할과 함께 동지들 및 조정의 역할도 중요하며 특히 민과 관의 상호보완이 필요함을 강조해줄 필요가 있다.

목차

〈국문초록〉
1. 머리말
2. 독도문제의 대두와 언론의 안용복 조명
3. 안용복장군기념사업회의 조직과 안용복 선양 활동
4. 안용복에 대한 사회의 인식과 평가
5.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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