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영남대학교 독도연구소 독도연구 독도연구 제28호
발행연도
2020.1
수록면
139 - 167 (29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숙종 임금과 영의정 남구만 등 조선정부 관리들은 국방정책과 변방관리에 특별히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지금까지의 논문은 1696년 안용복의 2차 도일에 대해 안용복 개인의 주도적 기획에 따라 실행에 옮긴 것으로 초점이 맞춰져 왔다. 그리고 안용복의 2차 도일과 관련하여 "숙종실록" 1694~1697년의 기록을 비롯하여 에도시대 일본 고문서인 "원록9병자년조선주착안일권지각서"와 "죽도기사" 등에서 안용복과 함께 뇌헌 일행 5명을 포함 모두 11명이 도일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 기록에서 안용복과 동행했던 순천승(여수 흥국사) 뇌헌 일행은 전라좌수영 소속 의승수군이었으므로 이는 조선 정부로부터 모종의 지령을 받아 공동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도일을 도모하고 실행에 옮긴 것이 아닐까라는 합리적 추정이 가능하다. 그런데 조선 정부가 정규군인 관군이나 전라좌수영 수군이 아닌 승려 신분인 의승수군을 파견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 이유는 첫째, 정규군을 파견함으로써 야기될 수 있는 일본과의 군사·외교적인 분쟁을 피하기 위해서라고 할 수 있다. 둘째, 뇌헌 등 5인의 흥국사 소속 의승수군들은 안용복, 이인성 등 민간인 소송단들을 안전하게 보호하고 호송하는데 적임자들이었을 뿐만 아니라, 일본과의 군사·외교적인 분쟁을 피할 수도 있는 조선 정부의 절묘한 선택이었다. 셋째, 이들 일행은 일본 에도막부로부터 울릉도·자산도(독도)가 조선의 영유임을 확인받기 위한 소송 목적도 있었지만, 일본 국내 상황에 대한 정찰 또는 정탐 목적도 있었다. 1696년 안용복과 함께 도일한 금오승장 뇌헌을 포함한 5명의 승려들은 ‘떠돌이 장사승’이 아닌 전라좌수영 산하 정규군인 의승장과 의승수군이었다. 결론적으로, 안용복과 뇌헌 일행은 《울릉도·독도 영유권 확립을 위한 민·관 합동 TF팀》을 구성하여 조선정부의 특별한 임무에 따른 목적을 수행하기 위해 함께 도일한 것이다.

목차

등록된 정보가 없습니다.

참고문헌 (0)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