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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金福順 (동국대학교)
저널정보
고려사학회 한국사학보 韓國史學報 제63호
발행연도
2016.5
수록면
97 - 124 (28page)
DOI
10.21490/jskh.2016.05.63.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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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 『최치원』전에는 그가 신라의 왕경 출신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그의 출생과 생애 그리고 최후에 관해서는 김부식의 기록과는 다른 여러 종류의 이설들이 전해지고 있다. 이러한 이설들의 출현에는 다음과 같은 배경이 근거로 작용하였다. 첫째 근거는 그의 선조에 대한 기록이 없어졌다는 김부식의 표현이었고, 두 번째 근거는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전해지는 그의 최후를 羽化登仙으로 표현한 기록이며, 셋째는 조선 후기에 등장한 소설 『최고운전』이 그의 생애에 대한 이설의 근거였다. 본고는 먼저 최치원의 생애에 관한 이설이 시작된 직접적인 연원으로 서유구의 『교인계원필경집서』를 주목하였다. 최치원이 옥구에서 출생했다는 설과 묘가 홍산에 있다는 설(墓在鴻山說)을 양산해 낸 여러 논고들을 살펴 본 결과, 다음과 같은 서유구의 주장에 근거를 둔 주장들이었다. 이 주장의 하나는 최치원의 출생과 가계에 대한 것으로, 그의 가계에 대한 기록에 그의 아버지와 형님이 모두 나오고 있어 그의 가계가 민멸되었다는 것은 그의 아버지와 형님이 왕의 측근에서 활동한 인물로 나오기 때문에 신빙성에 문제가 있다. 다음으로 그가 상선을 타고 유학가서 과거에 급제하였다는 주장에 대해서이다. 최치원은 경문왕에 의해 국가장학생으로 선발되어 당에 가서 급제하였다는 자신의 기록이 있으므로, 그의 이설은 근거를 제시하지 못한 주장이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그의 묘가 홍산에 있다는 설에 근거하여 홍산에서 생을 마쳤다는 이설에 대한 것이다. 홍산에 있는 이른바 최치원의 묘가 근래 발굴되어, 150년-200년을 전후하여 만들어진 무덤이라는 결론이 나왔으므로 사실상 그 주장의 근거가 사라졌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그는 벼슬을 버리고 방랑하다가, 해인사에서 은거한 삶을 살면서 저술로 소일하다가, 생을 마친 것으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목차

〈국문초록〉
1. 머리말
2.『교인계원필경집서』에 기반한 최치원 연구동향
3.『교인계원필경집서』의 비판적 고찰
4. 맺음말
참고문헌

참고문헌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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