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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광수 (부산외국어대)
저널정보
효원사학회 역사와 세계 역사와 세계 제49집
발행연도
2016.6
수록면
33 - 61 (29page)
DOI
10.17857/hw.2016.06.4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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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식민지 인도에서 영국 식민 지배자들이 왜 그리고 어떻게 사진으로 식민지를 재현하였는지, 그것은 어떠한 역사적 맥락 속에서 이루어졌는지를 규명하고자 하는 것이다. 사진이 식민 권력에 의해 권력 재현의 이미지로 역사를 만들어내는 하나의 텍스트로서 적극 활용된 것은 1857봉기가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영국은 인도 안에 거주하는 다양한 인종들의 정체성을 만들어 각각을 분리하고 그 위에서 단일한 인도 민족을 형성하지 못하게 하려는 통치 정책을 세우기 위한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1857봉기 때 그들이 반군에 가담하지 않았고, 멀리는 1757년 이후 영국의 영토 확장 전쟁 기간 동안 동인도회사에 협조적인 관계를 유지해 해 온 종족에 대해서는 우호적으로 그렸고, 1857봉기 때 반군에 가담하여 영국 세력에 큰 저항을 한 세력에 대해서는 매우 악의적으로 기술하였다. 후자에 속한 무슬림은 힌두와는 달리 하나의 정체성을 가진 세력으로 힌두와는 전적으로 달라 하나의 인도 민족을 형성할 수 없음을 보여주었다. 같은 시기에 근대화에 앞장 선 신흥 도시의 엘리트 계급은 자신들의 초상 사진을 대대적으로 제작하게 하였다. 꼴까따와 같이 1857봉기에 전혀 감당하지 않은 도시 지역을 중심으로 하여 형성된 영국 식민주의 지지자들인 그들은 자신들이 식민 지배자들과 동일한 문명인임을 보여주는 상징적 행위의 하나로서 한 사회적 행위였다. 그들은 스튜디오 안에 갖추어진 영국인의 의식주 문화 안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사진을 적극적으로 찍고 유포했다. 그들은 인도인 전체를 야만인으로 규정하는 그 식민주의 담론을 부정하지 않으면서 자신들이 ‘야만인 속의 문명인’임을 그 담론 속에서 찾은 이율배반적 행위를 자연스럽게 하였다.

목차

국문초록
머리말
Ⅰ. ‘야만인 만들기’와 분리통치의 정치학
Ⅱ. ‘문명인 따라 하기’와 식민주의 수용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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