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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서희경 (서울대학교)
저널정보
한국정치학회 한국정치학회보 한국정치학회보 제50집 제4호
발행연도
2016.9
수록면
77 - 104 (2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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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1956년 5.15 정 · 부통령선거 이후 제기된 개헌논의를 고찰한 것이다. 이를 통해서 제도변경과 권력 이해관계의 상호 연관성을 밝히고자 하였다. 1954-1960년 사이 한국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아젠다는 ‘포스트 이승만의 정치’였다. 자유당에 의한 1954년 정부통령제 개헌은 이승만 이후 권력승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런데 1956년 정 · 부통령선거 결과, 이기붕이 아닌 민주당의 장면이 부통령에 당선되었다. 갑작스럽게 정권 상실의 위기에 처한 자유당은 그 대책으로 내각제 개헌을 추진하였다. 그런 점에서 1956년 선거는 한국헌정사에서 ‘제도의 역설’(paradox of institution)과 ‘제도의 역류’(reverse of institution)라는 매우 흥미로운 정치적 결과를 낳은 선거였다.
1956년 이후 4년에 걸친 개헌 논의는 헌법과 법률 두 차원에서 진행되었다. 전자의 1단계 논의에서 자유당은 이승만의 존재를 인정하되 상징적 존재로 두고자 했다. 그러나 이승만 대통령은 이에 반대했다. 따라서 2단계 논의에서는 그를 바이마르 헌법의 대통령 지위에 놓고자 하였다. 후자의 1단계는 내각제 개헌 포기를 공식화하고, 정ㆍ부통령제만 바꾸는 극히 제한된 원 포인트 개헌을 하고자 했다. 이는 이승만의 개헌 가이드라인이기도 했다. 그러나 모든 계획은 실패했다. 이후 자유당은 일단 개헌을 통한 집권 계획을 중단하고, 임박한 1958년 총선을 준비하고자 했다. 이 단계에서 자유당은 헌법 차원의 대응을 멈추고, 법률 차원의 대응으로 전략을 전환했다. 이것은 언론과 행정기구 등의 정치 환경을 유리하게 조성하기 위해 선거법과 국가보안법을 개정하려는 것이었다. 또한 이기붕과 자유당 온건파는 야당인 민주당과의 합의개헌을 시도했다. 그러나 이승만과 자유당 강경파의 반대로 협상은 결렬되었다. 그리하여 1956년 정부통령 선거 이래로 시작된 개헌 논의는 어떤 성과도 거두지 못하고 막을 내렸다.

목차

논문요약
Ⅰ. 서론
Ⅱ. 1950년대 개헌의 특징: 이승만과 자유당 권력의 항구화
Ⅲ. 1956년 이후 개헌 논쟁: ‘제도의 역설’과 내각제로의 역류
Ⅳ. 1958년 총선과 정 · 부통령제 원포인트 개헌 논의
Ⅴ. 결론: 한국헌정사의 기본 구조와 딜레마
참고문헌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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