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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태희 (부산대학교)
저널정보
부산대학교 인문학연구소 코기토 코기토 제81호
발행연도
2017.2
수록면
474 - 503 (3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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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조선시대에 사군(四郡)이 도교적인 공간으로 인식되었음을 보여주는 자료들을 문헌에서 추출하여 정리하고, 그 의미를 논한 글이다.
사군은 단양(丹陽) · 청풍(淸風) · 제천(堤川) · 영춘(永春) 네 고을의 총칭으로, 조선 후기에 많은 사람이 유람한 승경이었다. 필자는 박사학위논문에서 사군 유기(遊記)를 연구하여 사군에 도교적 공간인식이 투영되어 있음을 밝힌 바 있으며, 여기서는 야담 · 필기 · 백과전서 등까지 범위를 확대하여 도교적 공간인식의 전체상을 파악하고자 하였다.
사군은 험준한 산줄기로 둘러싸여 있고 그 가운데를 흐르는 강에는 여울이 많아 외부와 격절된 공간이었으며, 그 속에 승경(勝景)과 동굴이 산재되어 있었다. 이러한 지리적 특성은 동천복지(洞天福地)와 유사성이 강하여 사군을 신선세계로 상상하기에 적합하였고, 동천복지의 상상은 기행문학에 흔히 표현되었다. 그리하여 사군에는 이인(異人) 설화와 도교 성향인물의 자취가 쌓였고, 지상선(地上仙)이 사는 공간으로 인식되었다. 이러한 인식은 대체로 16세기부터 나타나 전란을 거치면서 강해졌고, 18세기 들어 폭발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정감록(鄭鑑錄)』에서는 사군을 십승지(十勝地)에 포함하였고, 조선 후기 필기와 백과전서에도 사군을 피난처, 길지(吉地)로 인식하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러한 공간인식은 17세기부터 생겨났던 것으로 보이며, 19세기까지 계속해서 변화하며 확산되었다.
이제까지 실재하는 장소에 투영된 도교적 공간인식에 집중한 연구는 흔하지 않았다. 이 논문은 지리산 청학동과 묘향산에 이어 또 하나의 사례를 축적하였다는 점에서 인문지리학과 도교문화사에서 일정한 의의를 갖는다. 또한 조선시대 유기(遊記) 연구에서도 의의가 있다. 유기는 조선 전기 유학자의 세계관을 바탕으로 발전했던 문체이므로 유교적 색채가 짙게 드러난다. 반면, 사군 유기에는 도교적 공간인식이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특징이다.

목차

국문초록
1. 들어가며
2. 사군의 지리적 특성과 동천복지(洞天福地)의 상상
3. 이인(異人)의 은거지, 지상선(地上仙)이 사는 고장
4. 유토피아의 상상, 화란을 피할 십승지(十勝地)
5. 의의와 남은 문제들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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