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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연수 (한국학중앙연구원)
저널정보
서울민속학회 서울민속학 서울민속학 제3호
발행연도
2016.12
수록면
23 - 49 (27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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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현대까지도 지속되고 있는 시집살이 혼례문화의 전통이 과연 언제부터 시작되었고 어떠한 과정을 거쳐 정착되었는지에 대한 물음에서 출발하였다. 이러한 논의의 시작점에 있는 ‘친영(親迎)’ 제도는 조선초기 주자성리학서인『주자가례』를 통해 조선에 전파된 이래로, 왕실 및 사림세력에 의해 기존 ‘서류부가(壻留婦家)’, ‘남귀여가(男歸女家)’의 혼속에는 반대되는 ‘여귀남가’의 성격을 가진 혼례문화의 기틀을 마련해나갔다.
하지만 남자가 여자집으로 장가드는 것이 아닌, 여자가 남자집으로 시집가는 ‘친영’ 문화는 조선사회에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는 17 · 18세기의 여러 사대부문집 및 왕조실록등의 다양한 자료들을 통해서 뒷받침 된다. 그럼에도 계속되는 왕실의 친영정착 노력에 의해 20세기가 되면, 서울지역을 중심으로 점차 근현대의 시집살이 형태와 유사한 구조가 나타나게 된다.
이때, 흥미로운 점은 이것이 조선시대 전반에 걸쳐 논의되었던 ‘친영’의 정착이라고 보기 어렵고, 기존 혼속인 ‘우귀(于歸)’의 기간이 짧아지면서 발생한 현상이라는데 있다. 우귀는 결혼한 신부가 시댁으로 가는 절차로써 18세기까지도 그 기간이 수개월 이상이었다는 점이 확인된다. 그런데 『하재일기(1910c)』나 『현토주해 사례편람(1924)』 등의 20세기 문헌에서 그 기간이 보통 7일에서 최단으로는 당일까지로 짧아지는 모습을 보인다. 이를 필자는 ‘우귀친영화’라는 한 단어로 조어하여 이해를 돕고자 하였다.
이처럼 우귀의 기간이 급격하게 축소된 배경으로는 첫째, 주자성리학적 종법질서 확립에 따른 가족구조의 변화, 둘째, 경제관념에 따른 인식의 변화, 셋째, 교통의 발달의 세 가지를 들어 보았다. 이는 물론 서울지역을 한정한 논점이지만, 결국 시집살이 문화 정착의 바탕은 조선시대 친영을 일상화하기 위한 이념적 목적과는 상당히 다른 현실적인 반영에 의한 수용이라고 할 수 있다.

목차

국문초록
1. 머리말
2. 조선초기 『주자가례』에 나타난 친영의 의미
3. 조선중 · 후기 자료에 나타난 친영 정착의 노력과 우귀의 실행
4. 근대시기 서울에 나타난 우귀 · 친영의 조화와 시가살이 혼속의 정착
5.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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