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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윤상원 (전북대학교)
저널정보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한국독립운동사연구 한국독립운동사연구 제59집
발행연도
2017.8
수록면
111 - 141 (31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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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술국치 이후 곧바로 간도로 망명한 전일은 북간도에서 광성학교 교사가 되어 본격적인 독립운동에 뛰어 들었다. 광복단과 단지혁명결사대에 참여하였으며, 나자거우사관학교의 교사로 활동하였다. 러시아혁명 이후 1918년 하바롭스크에서 창립된 최초의 한인사회주의정당인 한인사회당에 참여하였으며, 한인사회당 적위군을 이끌고 백군과 일본군에 맞서 싸웠다.
이동휘와 한인사회당 중앙이 대한민국임시정부에 참여하기 위해 상해로 떠난 후 전일은 한인사회당의 연해주 지부로 설립된 일세당의 책임을 맡았다. 그는 일세당을 통해 사회주의운동을 전개하고, 승인-개조 분쟁 이후 복설된 대한국민의회를 통해 민족운동을 계속했다. 그러나 1920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선전문 5만 장을 인쇄하여 배포하다가 일본군 헌병에게 체포되어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재판과정에서 전일은 자신의 직업을 ‘조선독립운동’이라고 대답하며 자신의 활동이 정당하다는 것을 강력히 주장하는 재판투쟁을 펼쳤다. 감옥에 수감된 후 동지 12명과 함께 비밀결사 적유의용단을 조직하고 탈옥을 결행하였다. 탈옥에는 실패하였으나 전일의 이름은 전 조선에 알려지게 되었다.
1927년 8년 만에 출옥한 전일은 조선공산당에 입당하여 당의 세력 확장을 위해 북간도 등지에 지부를 설치하는 임무를 맡아 활동하였다. 신간회 길주지회 대표로 복대표대회에 참석했다가 일제 경찰에 체포되어 징역 5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하였다.
전일은 1934년 9월 30일 만기 출옥하였다. 출옥 후 고향 길주로 내려간 전일은 얼마 후 소련으로 망명하였다. 하지만 소련의 스탈린 대숙청의 광풍에 휘말려 일제스파이 혐의로 체포되었다. 결국 1938년 5월 하바롭스크에서 총살당했다.
전일의 생애는 조국의 독립과 조선민중의 해방을 위한 가시밭길로 점철되어 있다. 전일이 일제의 감옥에 갇혀있던 시간만도 도합 14년에 달했다. 그의 생애와 독립운동 과정은 일제강점기 자신을 희생하며 대의를 추구했던 많은 독립운동가들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목차

1. 머리말
1. 간도와 연해주에서의 독립운동
3. 청진감옥 파옥사건의 주인공
4. 투옥과 출옥의 반복
5. 맺음말
참고문헌
국문요약
Abstract

참고문헌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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