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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박삼헌 (건국대학교)
저널정보
가천대학교 아시아문화연구소 아시아문화연구 아시아문화연구 제44집
발행연도
2017.8
수록면
53 - 87 (35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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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스쿠니신사는 근대 일본의 전쟁에서 발생한 전사자를 모시는 ‘위령’ 공간이다. 하지만 아시아태평양전쟁 A급 전범도 모시고 있으므로, 국내외로부터 일본 우익의 상징 공간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메이지 전기에만 해도 경마가 개최되는 등 야스쿠니신사는 ‘위령’과 사뭇 다른 ‘여흥’의 공간으로도 기능하였다. 그렇다면 언제부터 야스쿠니신사를 바라보는 시선에서 ‘여흥’은 사라지고 ‘위령’과 ‘현창’만 남게 되었을까.
본고의 분석에 따르면, 메이지 전기의 야스쿠니신사는 서양식 경마가 개최되는 등 신정부의 문명개화 정책을 선전하는 공간으로 기능하였다. 하지만 1894년 청일전쟁, 1899년 배전(拜殿) 건축 결정 등을 거치면서 점차 ‘여흥’보타 ‘현창’의 기능이 강화되어 갔다. 그리고 1904년 러일전쟁은 야스쿠니신사의 ‘현창’ 기능이 굳건히 자리 잡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목차

Ⅰ. 들어가며 : 야스쿠니신사에서 여름 축제를 즐기는 사람들
Ⅱ. ‘여흥’의 공간, 야스쿠니
Ⅲ. ‘현창’의 공간, 야스쿠니
Ⅳ. 나오며 : 야스쿠니신사의 창립 150년 기념사업 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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