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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근우 (부경대학교)
저널정보
부산경남사학회 역사와경계 역사와경계 제104집
발행연도
2017.9
수록면
117 - 156 (4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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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아씨는 7세기 중엽까지 대왕가에 버금가는 씨족으로 권세를 떨쳤다. 그래서 일본 고대사 속에서 흔히 소아씨가 전제 혹은 전횡하였다고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이는 정치적이나 군사적인 권력을 중심으로 생각한 것이다. 소아씨는 정치ㆍ군사적인 측면을 넘어서서 종교ㆍ문화적인 측면에서도 대왕가를 능가하였던 것으로 판단된다.
이 글에서는 일본 고대의 소아씨가 갖는 특징을 다음과 같이 추출하였다. 첫째, 원시신도 등 일본열도의 고유신앙에 구애되지 않고 적극적으로 불교를 수용하였다. 둘째, 소아씨 및 관련씨족의 여성들이 최초로 출가하여 비구니가 되었다. 셋째, 원흥사(비조사), 풍포사 등 일본열도 최초의 본격적인 사찰을 건립하였다. 넷째, 대왕의 궁을 압도하는 규모와 전혀 새로운 기술로 사찰을 건립하였다. 다섯째, 대왕의 무력기반이었던 大伴氏를 포섭하고 物部氏 本宗家를 멸망시켰다. 여섯째, 정치 외교 재정 군사의 실권을 장악하였다. 일곱째, 人臣으로서는 최초로 대왕을 암살하여 대왕의 신성성을 부정하였다. 여덟째, 최초로 조상의 廟를 세우고, 천자의 춤인 八佾舞를 추었다. 아홉째, 자신들의 거처를 궁이라고 하였다. 열째 생전부터 壽陵을 조영하고, 陵이라고 하였다. 이러한 특성으로 미루어 소아씨는 기내의 전통적인 호족이라고 보기 어렵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불교의 도입과 蘇我氏
Ⅲ. 渡來系 씨족의 불교 수용
Ⅳ. 蘇我氏와 大王
Ⅴ.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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