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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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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저자정보
박근 (군산대학교) 김산 (전북대학교)
저널정보
한국무예학회 무예연구 무예연구 제11권 제4호
발행연도
2017.11
수록면
15 - 40 (26page)
DOI
10.51223/kosoma.2017.11.1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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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은 왕도정치의 정통성을 지향한 선진적 정치철학을 가진 나라였다. 그러나 무를 하시하는 구조적 결함을 지니고 있었다. 따라서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의 하나로 무묘의 설치가 제시 되었으나 이를 수용하지 못함으로써 무력에 의해 일본에 굴복하게 되는 수난을 겪게 되었다. 이후 대한민국은 미국의 힘에 의지하여 일본으로 부터 해방되었다. 따라서 대한민국의 국시는 우리나라의 시각이 아닌 미국의 시각에 의해 반공으로 규정되었고, 이로 인하여 분단의 아픔을 겪게 되었다. 활은 수천 년 우리민족을 대표하는 국기이다. 현재까지도 활은 수천 년의 문화를 간직하고 있다. 그 예가 바로 선생안에서 변형된 정간이라는 예법이다. 급속히 신설되고 있는 활터에는 공경할 선조가 없는 까닭에 정간이라는 변형된 예법을 선택하게 된 것이다. 이에 활터에서 무묘를 설치하여 수천 년 국난극복의 위인들과 항일 독립투사들을 배향한다면 조선과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회복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고대사 주역이었던 치우천왕으로 주벽을 삼는다면, 중국의 동북공정에 의해 강탈당할 처지에 놓인 고대사와 감추어졌던 천명의 정통성을 되살릴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목차

국문초록
Ⅰ. 들어가며
Ⅱ. 조선의 성리학적 배경
Ⅲ. 무묘 논의에 대한 고찰
Ⅳ. 무묘는 설립되어야 하는가?
Ⅴ. 활터에서의 무묘 설치가 갖는 역사적 의의
Ⅵ. 맺으며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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