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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상균 (강원도청)
저널정보
역사문화학회 지방사와 지방문화 지방사와 지방문화 제21권 제1호
발행연도
2018.5
수록면
93 - 122 (30page)
DOI
10.17068/lhc.2018.05.21.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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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크게 유행했던 유람문화는 사대부들의 대표적 풍류였다. 사대부들은 유람에 나서면 유람지에 있는 명현의 자취를 찾아 답험하였다. 이것은 사대부 유람 속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한 전통이었다. 이러한 전통 속에서 당시 학파의 종장으로 추앙받던 이황 · 조식 · 이이 등의 인물과 관련된 장소인 청량산 · 지리산 · 오죽헌 등은 당대의 인물명소로 부각된다.
경상좌도의 청량산은 이황, 경상우도의 지리산은 조식이 후학을 양성하던 곳이었다. 그리고 이 곳을 중심으로 영남학파가 형성되었고, 영남사림들은 두 산을 성산으로 여겼다. 이에 비해 오죽헌은 이이가 태어나고 유년시절을 보낸 곳이긴 하였으나 그곳에 머물면서 후학을 양성하여 그 지역을 중심으로 한 하나의 주류 학파가 형성된 곳은 아니었다. 오죽헌이 인물명소로 탄생하게 되는 데에는 청량산이나 지리산과는 다른 장소적 의미와 동기가 있었다.
오죽헌은 관동유람의 유행과 함께 인물명소로 지명도가 높아지기 시작한다. 관동지역의 금강산과 관동팔경의 수려한 경승은 사람들에게 동경의 대상이었고, 많은 이의 유람을 발행시켰다. 이러한 유람문화의 기조와 유람 중 명현의 유적 답험이라는 전통 속에서 유람객들이 관동유람 중 관동팔경의 하나인 경포대 지근거리에 있는 오죽헌을 방문하는 사례가 증가한다.
오죽헌 방문 성행의 실증적 사료는 오죽헌 방명록인 『심헌록』이다. 여기에 기록된 방문자들 면면에 오죽헌의 방문동기가 파악된다. 방문자 대다수는 봄과 가을 관동유람 중 오죽헌을 방문하였다. 방문추이를 보면 18~19세기 방문객이 가장 크게 증가한다. 이 시기는 조선시대 유람이 가장 성행하였고, 금강산과 관동팔경이 유람지로 각광 받았다. 오죽헌의 방문객 증가와 관동유람의 유행 시기는 그 궤를 같이 하고 있다. 『심헌록』을 통해 오죽헌은 관동을 유람하는 많은 사람들의 방문과 함께 18세기에는 인물명소로 크게 부각되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정조가 오죽헌에 관심을 보였고, 이이의 유품에 어제어필 한 이후 강릉을 찾는 유람객들의 오죽헌에 대한 관심은 더욱 커졌다. 사람들이 오죽헌을 찾는 근본적인 목적은 이이에 대한 추숭이었지만, 관동유람의 성행은 오죽헌 방문객 증가의 중요한 동기로 작용했고, 유람객들로 인해 오죽헌은 세간에 더욱 알려지면서 인물명소로 재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실례를 실증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심헌록』인 것이다.

목차

초록
1. 머리말
2. 유람전통에서의 오죽헌 방문객 증가 요인
3. 오죽헌 방문기록 『심헌록』의 書誌와 史實性
4. 『심헌록』을 통해 본 오죽헌의 인물명소화
5. 맺음말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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