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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金虎俊 (충청북도문화재연구원)
저널정보
한국문화사학회 문화사학 文化史學 第49號
발행연도
2018.6
수록면
5 - 36 (32page)
DOI
10.29334/MHSH.2018.06.4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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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일대에서 발굴조사된 백제 석축산성은 대부분 신라 및 통일신라, 고려에서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점유국가별로 대규모 수개축이 이뤄졌기에 원형을 찾기는 매우 어렵다. 이러한 점이 한성기 백제 석축산성 축성시기 및 기법 등의 연구를 진척하는데 장애물이 되었다. 반면에 전체적인 백제의 석축산성에 대한 비판을 제대로 반박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게 하였다.
본고는 현재까지 확인된 한성기 백제 석축산성에 대한 자료를 정리하고, 이를 부정하는 견해에 대해 재검토하여 그 문제점을 지적하고자 하였다.
한성기 백제가 석성을 축조하지 않았다는 견해는 크게 3가지로 정리된다. ①백제의 도성이 土城이기에 지방의 성곽도 토성이라는 가정, ②백제 석축성벽 축성방식은 신라 석축성벽과 유사한 점. ③한성기 백제의 석재 가공기술 및 石匠 집단의 부재 등 기술력이 부족한 점을 들 수 있다.
그러나 5~6세기에 축성된 것으로 알려진 신라 석축산성의 원형을 제대로 확인한 사례가 거의 없다. 반면에 6~7세기에 축조된 신라 석축산성은 4세기 후반에서 5세기에 축성된 백제의 석축산성 기초 시설 및 뒤채움 기법을 채용한 반면에 土築部(일명 內托部) 대신 내벽을 쌓고 그 안쪽에 토사로 다져서 내부의 공간을 활용한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이후에 신라 석축산성은 지속적으로 성벽과 보축성벽 등에 대해 증개축을 통해 현재의 內外夾築의 대형 성벽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편 한성기 백제의 석축성벽 성돌 가공기술의 정교함에 따라 기술력이 부족하다는 주장은 백제의 石室墳과 성벽의 석재 및 벽체 축조법 등 다양한 사례를 비교한다면 기술계통 양상으로 접근한 단편적인 논리라 판단된다.
한성기 백제 석축산성의 축조기법과 성격 문제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삼국의 축성양상을 시기별로 구분하고, 중앙과 지방의 축성양상, 성곽의 축성목적 및 성격, 주변 유적에 대한 고고학적 검토 등 다방면에서 접근하여야 할 필요가 있다.

목차

요약
Ⅰ. 머리말
Ⅱ. 한성기 백제 석축산성의 批判에 대한 再論
Ⅲ. 한성기 백제 석축산성의 축조기법
Ⅳ.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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