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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윤조 (계명대학교)
저널정보
계명대학교 한국학연구원 한국학논집 한국학논집 제71집
발행연도
2018.6
수록면
151 - 177 (29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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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후반의 저명한 문인 학자인 靑城 成大中은 50대 전반에 4년간 현재의 경북 흥해에서 군수로 재임하였다. 성대중은 재임 기간에 경주의 학자인 蒙巖 鄭熺와 교분을 맺었고, 서울로 돌아간 뒤에도 편지로 교유를 지속하였다. 본고는 정희와 성대중의 문집에서 두 사람의 교유에 관련된 자료를 찾아서 정리한 보고서다. 몽암은 생원시에 합격했지만 관직에 나간 기록은 없다. 소규모의 농지를 소유한 地主로, 학생을 가르치는 일을 업으로 삼아 일생을 경주에서 지낸 재야 지식인이었다.
몽암은 옛 법도에 매이지 않은, 대단히 현실적인 자세를 지닌 사람이었다. 그는 河圖洛書의 존재를 부정하였다. 성인의 마음은 그런 도식으로 표현될 수 없다고 한다. 그는 또 鬼神의 이치는 인간에서 찾아야 그 속내를 알 수가 있다고 한다. 사람에 더 긴밀하게 붙여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나아가 몽암은 喪禮에서도 대단히 開明한 자세를 보여준다.
몽암은 조세제도는 국가 재정 수요 충족을 위한 징세 기능뿐만 아니라 백성들에 대한 적절한 생활 보장 기능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의 병력 감축 주장은 대단히 독창적이다. 몽암은 강한 군대는 군인의 숫자에 달려 있지 않다고 말한다. “숫자가 적은 것이 문제가 아니고 精兵이 못되는 것이 문제”라고 진단하였다. 그는 장부에 이름만 올라 있는 30만 군대를 절반으로 줄여서 제대로 된 15만 精兵을 얻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성대중은 성실한 학자이므로, 임지와 그 주변의 일에 관심이 깊었다. 청성은 경주와 그 주변에 관한 여러 가지 일을 몽암의 제보와 협조로 알 수 있었다. 몽암 역시 학자적 자세와 의식을 갖고 있었다. 그는 지방의 재야 지식인으로서 상당히 높은 식견과 주장을 지닌 인물이었다. 몽암 정희라는 인물과 그가 남긴 작품들은 18세기 경주와 흥해, 나아가 영남의 한문문학에 대한 새로운 자료로, 또 성대중이라는 탁월한 인물을 이해하는 데 요긴한 자료로 주목할 만하다고 생각된다.

목차

Ⅰ. 머리말
Ⅱ. 蒙巖 鄭熺의 생애와 저작
Ⅲ. 정희와 성대중의 교유
Ⅳ. 맺음말
참고문헌
〈Foreign language abstracts〉

참고문헌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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