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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봉곤 (원광대학교)
저널정보
원광대학교 원불교사상연구원 원불교사상과종교문화 원불교사상과종교문화 제76집
발행연도
2018.6
수록면
83 - 122 (4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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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한국종교의 공공성은 국권이 피탈된 일제 치하에서, 민족운동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잘 드러난다. 1900년대 일제의 침략이 가속화되자 근대 한국종교에서는 종교가 정치적으로 이용되거나 탄압되는 것을 막기 위해 정교분리를 선언하였다. 그리하여 교리가 심화되고 교단이 체계적으로 정비되는 등 근대종교로서의 모습을 띠게 되었다.
그러나 1910년대 일제의 정치적 탄압과 함께 삶의 구조가 왜곡되고 종교행위마저 자유롭지 않자, 근대 한국종교에서는 국권을 되찾으려는 운동에 적극 나서게 되었다. 더욱이 1917년 러시아혁명과 1918년 미국 윌슨 대통령에 의해 민족자결주의가 제창되자, 근대 한국종교에서는 민족운동의 사상적 기반으로 적극 수용하였다. 이에 근대 한국 종교에서는 1919년 일제의 식민지적 지배에서 벗어나기 위해, 천도교 측에서는 비폭력 만세시위 운동을 전개하였고., 대종교 측에서는 무장투쟁을 선언하였으며, 보천교는 천제와 같은 비밀스런 종교적 행위를 통해 독립을 쟁취하려고 하였다.
3.1운동을 전후하여 근대 한국종교는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을 위해 노력하였다. 대종교인들은 1911년 이래 상해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하고 있었기 때문에,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될 때 많은 인물이 참여하였다. 천도교도 한성정부와 노령정부가 통합된 1919년 9월 이후 본격적으로 대한민국임시정부에 참여하였다. 보천교도 일제의 지배에서 벗어나 새로운 개벽 세상을 연다는 포교론의 실현과 독립운동을 통한 외연의 확장을 위해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적극 지원하였다.
다만 1921년 이후 천도교가 이승만의 위임통치론 등에 반발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불신하였고, 보천교도 일제의 회유공작에 넘어감으로써 임시정부와 이들 종교와의 관계가 점차 소원해지게 되었다.

목차

요약문
Ⅰ. 머리말
Ⅱ. 일제강점기 근대 한국종교의 정교분리
Ⅲ. 민족자결주의와 근대 한국종교의 정치참여
Ⅳ.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과 근대 한국종교의 역할
Ⅴ. 맺음말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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