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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영석 (한국의병연구소)
저널정보
국방정신전력원 정신전력연구 정신전력연구 제51호
발행연도
2017.11
수록면
153 - 215 (63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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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당시 두 차례의 전투가 있었던 진주성은 전략적 요충지이다. 이는『선조실록』,『연려실기술』,『서애문집』등 여러 문헌에도 잘 나타나 있다. 당시 주요 인사들도 이러한 전략적 가치를 판단하고 있었다. 국가에 난리가 나면 백성들을 타일러 이를 극복하게 하는 임무를 지닌 초유사 김성일은 누구보다도 진주성의 가치를 잘 알고 있었다. 즉, 진주는 남쪽 지방의 거진(巨鎭)으로 경상도와 전라도의 요충지로, 이곳을 지키지 못한다면 여러 고을이 토붕와해 되어 조석을 보전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적이 반드시 호남을 침범할 것이라고 예견하였다.
이러한 진주성의 중요성으로 인해 제1차 진주성 전투는 조선군 3,800여 명으로 일본군 30,000여 명을 물리친 대첩이었다. 이 승리는 지휘관 김시민의 탁월한 리더십이 있었기에 가능하였다고 평가한다. 즉, 그의 리더십은 ① 정신전력의 극대화, ② 민 · 관 · 군의 일치단결, ③ 엄정한 군기유지와 강력한 지휘권 확립, ④ 동고동락을 통해 민심과 군심 결집, ⑤ 뛰어난 용병술, ⑥ 활발한 정보수집과 심리전 활동 등이었다.
또한 제2차 진주성 전투 역시 다른 연구자들은 패배한 전투라고 정의하지만, 필자는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다. 비록 전술적으로는 패배하였지만, 전략적 측면에서 승리한 전투라고 평가하기 때문이다. 이유는 3,000여 명의 병력으로 고립무원 상태에서 일본군 최정예요원 93,000여 명을 맞아 10일간 28회에 걸쳐 싸워 그들에게 두려움과 전율의 대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 전투 후 왜성으로 복귀하였으며, 정유재란 직전까지 더 이상 호남을 침략하지 못한 것이 이를 증명한다고 본다.
이와 같은 전략적 승리를 거둔 제2차 진주성 전투 역시 지휘관들의 탁월한 리더십 때문이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① 정신전력의 극대화, ② 민 · 관 · 군의 일치단결, ③ 엄정한 군기유지와 강력한 지휘권 확립, ④ 동고동락을 통해 군심과 민심을 결집 것 등이다. 그러나 제2차 진주성 전투의 사례를 통해 도출한 미흡한 사례도 역사적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이는 ① 협조된 작전 미실시, ② 지휘관 서예원의 잘못에 대한 지휘조치 전무, ③ 정보수집 활동 부족 등이다.
현재 한반도의 상황이 매우 심각한 상태이다. 이러한 시기에 전사를 통해 지휘관들의 리더십 발휘가 어느 때보다도 중요하다는 것을 생각해 보는 것도 매우 의미 있다고 본다. 역사를 잊은 민족은 미래가 없다고 하듯이 우리는 진주성 전투의 전훈을 되새기며, 싸워 이길 수 있는 부대원의 정신전력극대화에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목차

국문초록
Ⅰ. 서론
Ⅱ. 당시의 진주 상황과 장수(지휘관)의 자질
Ⅲ. 제1차 진주성 전투
Ⅳ. 제2차 진주성 전투
Ⅴ. 결론
참고문헌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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