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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홍성열 (국민대학교)
저널정보
신라사학회 신라사학보 신라사학보 제43호
발행연도
2018.08
수록면
1 - 35 (35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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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통일기 이후 신라의 핵심 군사조직으로 발전하는 구서당의 모태라고 할 수 있는 서당에 대해서 그 군사조직이 어떤 이유로 어떻게 창설 되었고 운용되었는지 알아보기 위해 작성하였다. 구서당이 삼국통일 이전 서당과 단절된 것이 아니라 그 연장선상에서 명칭이 변화하고 규모가 확장되었기 때문이다.
서당은 부대의 성격을 나타내는 글자인 ‘誓’와 군사력・군사조직을 나타내는 ‘幢’이 합쳐져 만들어진 글자로서 ‘국왕에게 충성을 맹세한 부대’라는 뜻을 가졌으며, 그 이름을 통해 국왕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며, 국왕의 지근거리에 행동하는 군사조직으로 추정할 수 있다. 곧 국왕이 직접 통솔하며 가까운 거리에서 보좌하는 국왕직속 군사기구로 생각한다. 신라가 ‘6정’ 이라는 체계적인 군사조직이 이미 존재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서당을 창설한 것은 당시 신라 내부의 정치상황과 연결되는데, 당시 강력했던 귀족세력을 견제하고, 친정을 선포하기 이전 진평왕의 국왕권을 뒷받침하기 위해서 국왕이 직접 지휘권을 행사하는 직속 군사기구로서 창설되었다.
한편 서당의 대외전쟁 참여 시기와 시위부 관부의 첫 출현 시기가 진평왕 46년으로 같은데, 이는 대외전쟁의 격화로 국왕직속 군사기구인 서당이 대외전쟁에 참여하면서 국왕 시위의 공백을 매우기 위하여 시위부가 만들어졌기 때문으로 보인다. 서당의 구성원들은 국왕 또는 왕실이 직접 선발한 소모병으로 판단하며 이들을 전렵 등을 통해 국왕의 직속군사기구로 양성했을 것으로 보인다.
중고기 서당은 장군이 아닌 대감이 지휘한 것으로 보인다. 대감은 장군과 같이 군사조직을 지휘할 수 있는 직책으로 장군과 달리 진골 이외의 신분도 임명이 가능하였다. 삼국통일전쟁으로 인한 신라 군사조직의 확대 이전까지는 ‘6정’외에 군사조직의 지휘관은 대감일 가능성이 크다고 보며 특히 시위부, 계금당 등 국왕 직속 군사조직들은 최고지휘관이 대감으로 나타나므로 서당도 최고지휘관이 대감이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중고기 서당의 설치
Ⅲ. 서당의 운용 형태
Ⅳ.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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