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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경태 (고려대학교)
저널정보
한일관계사학회 한일관계사연구 한일관계사연구 제61집
발행연도
2018.8
수록면
125 - 172 (48page)
DOI
10.18496/kjhr.2018.08.6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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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전쟁기 명군과 일본군 사이에서 진행된 강화교섭에 조선은 개입하지 못했다. 그러나 강화교섭의 진행 상황을 파악하지 않고 전쟁에 대응하기는 어려웠다. 조선은 돌파구를 마련했다. 독자적으로 일본군과 접촉하여 정보를 얻고자 한 것이다. 본 연구에서는 그중에서도 전선에서 대치 중이던 조선군 장수들과 일본군의 접촉에 주목했다. 두 진영 사이의 교섭 내용은 일본군 나베시마 나오시게 가문 계열의 사료인 『泰長院文書』에 다수 수록되어 있다. 이 문서군과 조선의 실록을 교차 분석하여 교섭의 실상을 밝히고자 했다.
이 접촉은 양 진영 간의 충돌을 방지하는 교섭에서 시작하여, 강화교섭을 논의하는 단계까지 진전했다. 그러나 조선 정부는 이 교섭이 정보파악이나 명과 일본 강화교섭을 방해하는 수단 이상으로 전개되는 것을 우려했다. 그리고 명 조정에서 책봉사 파견이 결정되자 교섭 중지를 명령했다. 하지만 조선은 이미 확보한 이 교섭 경로를 포기하지 않았다. 적과의 직접교섭에서 얻는 효과를 이미 인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1596년 책봉사와 통신사 파견시기, 그리고 1597년 정유재란이 발발하기 직전, 조선 정부는 김응서 등에게 일본군 장수들과 접촉하여 정보를 얻어낼 것을 지시했고, 유용한 정보를 얻어낼 수 있었다.
첨예하게 대치한 전장에서도 교섭은 반드시 존재한다. 임진전쟁에서도 많은 이들이 교섭의 필요성을 잘 알고 있었지만, 일방적인 침략을 당한 조선에서 이를 담당하기 위해 나서는 이는 많지 않았다. 따라서 조선 장수들이 획득한 교섭 경로와 성과, 정보는 이후로도 유효성을 가졌다. 또한 조선 정부가 보여준 유연한 선택 역시 조선이 보여줄 수 있었던 외교 활동의 한 모습으로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목차

국문초록
1. 서론
2. 兩軍주둔지 사이의 충돌과 교섭의 발단
3. 金應瑞와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의 등장과 교섭의 진전
4. 이면교섭의 결말과 조선 정부의 판단
5. 결론
참고문헌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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