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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허지은 (서강대학교)
저널정보
서강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서강인문논총 西江人文論叢 第52輯
발행연도
2018.8
수록면
277 - 318 (42page)
DOI
10.37981/hjhrisu.2018.08.52.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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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동제국기』는 신숙주가 역사, 지리, 풍속, 사신왕래의 연혁, 사신접대의 규정에 관한 舊禮를 찬술한 것이다. 신숙주는 1443년에 통신사의 서장관으로 직접 일본에 다녀온 경험과, 오랫동안 예조판서로 있으면서 축적한 외교경험을 바탕으로 조선과 일본의 과거 典籍을 참고로 하여 『해동제국기』를 완성하였다.
1471년 『해동제국기』가 편찬된 이후 조선에서는 일본의 지리, 환경, 일본인의 혈통을 파악하는데 『해동제국기』가 기본자료가 되었으며, 일본과 류큐왕국 등 외국에 대한 접대 의례의 기준이 되고 있었기 때문에 북방 야인들에 관한 책자를 만드는데 있어서도 그 참고자료로서 이용되었다. 그리고 추가적으로 일본과 관련된 새로운 정보를 입수하게 되면 기존의 『해동제국기』 내용에 첨부해 가는 방식으로 내용을 보완해 갔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사신접대와 관련하여서는 당시의 상황을 반영하여 조정해야 한다고 하는 등 그 내용을 전적으로 신뢰하지 않았고 이견도 많았다. 또한 임진왜란 시기 『해동제국기』는 명나라의 정응태가 조선을 참소하는 근거가 되기도 했다. 이 사건은 정무를 중단하는 극단적인 선택을 함으로써 조선을 무고했던 것으로 결론이 났다. 이후 명나라를 의식하여 조선에서는 『해동제국기』의 유통이 활발하지 않았다.
한편 청대 중국에서는 『해동제국기』를 구하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유통이 이루어져 일본을 파악하는 자료로 활용되었다. 일본에서는 임진왜란 이후 조선과의 원활한 외교・무역 관계의 유지를 위해 그리고 조선이 일본관련 정보를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는지를 알기 위해 『해동제국기』가 유통되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 결과 현재 『해동제국기』의 판본은 한국보다 일본에 더 많이 남아 있다.

목차

국문초록
1. 머리말
2. 신숙주의 해동제국기 편찬배경
3. 정응태의 ‘조선무고사건’과 조・중관계
4. 『해동제국기』 적용사례와 조・일관계
5. 결론
참고문헌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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