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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백승옥 (국립해양박물관)
저널정보
효원사학회 역사와 세계 역사와 세계 제57집
발행연도
2020.6
수록면
145 - 179 (35page)
DOI
10.17857/hw.2020.6.57.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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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사 연구의 효시는 한백겸(1552~1615)으로 볼 수 있다. 그는 최치원(857~?) 이래 조선 전기까지 변한을 백제 혹은 고구려로 보는 설을 비판하고, 삼한의 위치를 한강 이남으로 비정하였다. 마한은 호남과 호서지방으로, 진한은 경상도 동북 지역으로, 변한은 경상 서남지역에 존재했던 것으로 보았다. 이러한 그의 위치 비정은 논리적이면서도 다양한 고증방법에 의한 것이었다. 이후 그의 가야사에 대한 인식은 조선 후기 많은 실학자들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유형원(1622~1673)은 한・중・일 삼국의 역사서들을 섭렵한 바탕 위에서 가야사를 인식했다. 이익(1681~1763)과 안정복(1712~1791)의 가야사 인식은 합리적이면서도 철저한 사실 고증에 바탕을 둔 것이었다. 19세기 초 정약용(1762~1836)과 한치윤(1765~1814)・한진서(1777~?)의 시기에 이르면 가야사가 과학적이면서도 실증적 방법론에 의해 연구되기 시작한 것으로 평가 할 수 있다. 그리고 진정한 의미에서 가야사가 한국사의 한 부분으로 자리 잡게 된것도 이 시기부터라고 할 수 있다.
한치윤의 『海東繹史』(1823)에서는 ‘加羅’와 ‘任那’를 ‘世紀’에 두고 있다. 비록 ‘諸小國世紀’ 안에 기재하고 있지만, 이는 자료의 영세성 때문이었다. 기본적으로는 삼국과 동등한 위치로 인식한 결과이다. 다만 일본 측 기록인 『日本書紀』 등을 인용하여 加羅가 日本의 附庸國이었다고 본 점 등은 문제점으로 지적할 수 있다. 사료 비판에 한계가 엿보이는 것이다.

목차

국문초록
머리말
Ⅰ. 조선 전기 관찬사료
Ⅱ. 조선 후기 사찬사료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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