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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동철 (부산대학교)
저널정보
부산대학교 한국민족문화연구소 한국민족문화 한국민족문화 제69호
발행연도
2018.11
수록면
183 - 225 (43page)
DOI
10.15299/jk.2018.11.69.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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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관을 무대로 외교 · 무역 등 다양한 업무를 담당하는 일본어 역관 2명이 서울에 파견되었다. 그들이 훈도와 별차다. 이들을 보좌하는 현지 출신 하급 통역관이 소통사다. 소통사와 같은 하급 역관은 조선전기 ‘삼포왜관’때부터 존재하였다. 이들이 왜학생도다. 『경국대전』에 규정된 부산포 왜학생도의 정원은 10명이다. 『증정교린지』에는 왜학생도를 소통사라 하였다. 소통사는 정원이 있었다. 16명에서 35명, 다시 30명으로 바뀌었다. 소통사는 다양한 업무를 담당하였기 때문에 명칭만 약 20종류다. 이 가운데 중요한 직책은 首通事, 通事다.
필자는 최근 소통사 김채길 관련 준호구 약 20점을 입수하였다. 이 준호구에서 중요한 것은 김채길과 아버지 김대련의 職役이 ‘生徒’란 점이다. 생도는 ‘倭學生徒’를 가리킨다. 김채길은 배통사 등 활동을 하였다. 그는 1876년 1차 수신사 때는 통사로서 일본에 갔었다. 1876년 조일수호조규와 1876년 1차 수신사에 참가한 공로로, 1880년 사역원은 그의 포상을 추천하였다. 김대련과 김채길은 부자가 소통사로 활동한 대표적인 사례다.

목차

〈국문초록〉
1. 머리말
2. 동래부의 倭學生徒와 小通事
3. 김채길 관련 준호구 검토
4. 김채길의 개항 전후 활동
5.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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