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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성제 (동북아역사재단)
저널정보
한국고대사학회 한국고대사연구 한국고대사연구 제92호
발행연도
2018.12
수록면
165 - 197 (33page)
DOI
10.37331/JKAH.2018.12.92.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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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살은 고구려의 왕도 5부와 대성에 주재한 관이었다. 大城은 遼東城·烏骨城·國內城·柵城·漢城의 5곳으로 파악된다. 이들 성은 지방의 주요 거점이면서 군사기지로, 중앙군이 배속되어 있었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주위의 諸城이 주로 현지 주민으로 편성된 지방군을 보유하고 있었던 것과는 달랐던 것이다. 제성의 방어를 지방군이 맡도록 하고 중앙군은 주요 거점에 두어 유사시에 대비한 것으로 고구려가 구축했던 성 중심의 방어체제가 견고할 수 있었던 원인의 하나라고 여겨진다.
北部褥薩·南部褥薩의 존재는 욕살이 지방의 대성만이 아니라 왕도의 5부에도 주재했음을 알려준다. 사료에 보이는 5部兵의 존재는 이들 욕살이 지휘했던 중앙군이었다. 이 두 계통의 욕살-部名과 城名을 冠稱한-은 중앙과 지방에 주재한다는 차이에도 불구하고 중앙군을 지휘하여, 왕도와 대성이라는 나라의 근간이 되는 곳을 지켰다는 점에서 직임상 동일하였다. 또한 지휘의 내용과 막중한 책임으로 보아 욕살에의 취임은 제5위의 官位를 가진 武將 가운데 국왕의 신임을 받는 자에 한정되었다.
욕살은 여러 제성들로 이루어진 광역의 지역 공간이 아니라 훨씬 한정된 지역을 관장하였다. ‘都督兼摠兵馬, 管一十二州高麗, 統卅七部靺鞨’의 기록은 책성이 12州의 하나이며, 이들 대군을 지휘하기 위해서는 총병마라는 별도의 관함이 필요했음을 알려준다. 고구려는 성 방어체제를 뒷받침하기 위해 유사시 야전군을 운용했는데 욕살은 이 야전군의 지휘관에 취임할 수 있는 관이었다. 욕살의 本職을 소지하고 겸직으로서 야전군의 지휘를 맡았던 것이다.
대성과 제성 간의 統屬관계와 관련하여, 發兵權을 제외한 여타 군사의 일에 대해서는 욕살이 관할하였던 것으로 이해된다. 현지에서 중앙군 부대를 지휘한 욕살이고 보면 군사 방면에서의 책임이 막중했을 것이고, 유사시에 제 병력을 지휘하기 위해서 기본적인 군사관계는 마련되어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목차

국문초록
I. 머리말
II. 駐在地와 大城의 요건
III. 王都 5部·大城의 관할과 職任
IV. 大城과 諸城의 관계
V.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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