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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정병삼 (숙명여자대학교)
저널정보
한국사학회 사학연구 사학연구 제132호
발행연도
2018.12
수록면
313 - 344 (32page)
DOI
10.31218/TRKH.2018.12.13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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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초 광종대는 고려불교의 운영 체계가 갖추어지던 중요한 시기이다. 승과(僧科)를 시행하여 합격한 승려에게 교종과 선종으로 구분된 승계(僧階)를 주어 주지 등 교단의 중심 인물로 활동할 수 있도록 했고 후일 별사과(別賜科)의 경제적 기반을 받을 토대도 만들었다. 고승들은 왕사와 국사로 초빙하여 우대하기도 했으며, 사상적으로는 선과 교를 아우르는 경향을 적극 후원하기도 했다.
법인(法印)국사 탄문(坦文)은 이와 같은 교단 형성기에 교종의 중심인물로 활동했다. 탄문은 화엄종 출신으로 사상적으로 큰 역량을 발휘했던 균여(均如)와의 각축 관계 속에서 교단 운영의 한 중심을 이루었다. 탄문과 균여의 행적과 사상적 경향은 상호 대비되는 면모를 보인다. 둘다 신이한 능력으로 왕권과 연결된 점은 동일하다. 탄문은 광종 탄생 기도와 해충 퇴치, 태자를 위한 천불도량 기도 등 신이한 기도 능력을 발휘했고, 혜종 즉위시의 경찬법회 주관과 정종 즉위시의 구룡산사 법회 법주 및 내도량 대장경법회를 주관하는 등의 활동으로 교종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왕사와 국사에 책봉되어 교학 활동보다는 기도와 강설에 관련된 족적을 주로 남겼다. 탄문이 왕사에 책봉될 때 선종의 혜거(惠居)가 국사에 책봉되었다. 이는 과거제 실시와 더불어 시행된 승과와 교단의 운영을 교종과 선종의 두 축으로 의도한 것과 밀접한 연관을 갖는다. 균여 또한 왕비의 치병에 관여하고 장마를 중지하는 강연과 벽력을 중지하는 기도 등 신이한 활동도 보였으나, 화엄초기 교학의 중심 전적을 강의하고 저술을 펴내 신라 화엄학을 종합 체계화하고 화엄절대주의 사상을 제시하였다. 탄문이 교종의 중심 인물로 활동했지만 사상면에서 적극적인 교선일치 경향을 보인 흔적은 찾기 어렵다. 고려 전기의 선교일치를 모색하는 주도적인 분위기에서 탄문이 이를 적극 제창했던 전거는 명확하지 않다.
탄문의 활동 근거지는 개경의 구룡산사(九龍山寺)와 서산 보원사(普願寺)였다. 혜종과 정종대에는 개경 가까운 구룡산사에서 활동하며 왕실과 긴밀한 관계를 가졌으나, 탄생부터 밀접한 관계를 가졌던 광종대 초반에는 보원사에 머물며 광종의 안정된 왕권 운영을 위한 기도와 불사에 치중하였다. 만년에 왕사로서 개경의 귀법사(歸法寺)에서 활동했고, 입적에 즈음하여 다시 보원사에 내려왔다. 보원사는 화엄십찰의 하나로 신라말 관단(官壇)이 설치된 주요 사원으로서, 탄문은 이곳에서 화엄 강학활동을 하며 사원 경영에도 힘을 기울였다. 광종 초반에 탄문이 삼존금불과 석탑을 조성한 곳은 보원사로 판단되며, 탄문이 광종의 원만한 국사운영을 위해 조성했던 불상과 석탑의 존재는 불교 조형사상 큰 의미를 갖는다.

목차

요약
머리말
Ⅰ. 탄문(坦文)의 생애
Ⅱ. 선종-교종 체제와 탄문
Ⅲ. 탄문의 활동과 공덕신앙
Ⅳ. 보원사(普願寺)와 탄문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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