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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윤성호 (서울특별시 광진구청)
저널정보
고려사학회 한국사학보 韓國史學報 제74호
발행연도
2019.2
수록면
289 - 318 (30page)
DOI
10.21490/jskh.2019.02.74.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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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료가 부족한 한국고대사의 공백을 채우는 금석문 자료 중에서 명문기와는 비교적 많은 양이 확인되고 있다. 특히 한강유역에서 삼국간의 접전이 벌어진 아차산성에서는 1997년부터 현재까지의 조사를 통하여 약 2만점의 기와 중에서 200여점의 명문기와가 수습되었다. 본고에서는 이러한 자료에 주목하여 아차산성의 명문기와를 통하여 신라 북한산성의 운영에 대하여 검토하였다. 아차산성에서 출토된 명문기와를 각서 명문기와와 타날 명문기와로 구분하여 타 지역 출토품과 비교하면서 유형별로 정리해 보았다. 이러한 분석을 통하여 타날 명문기와의 경우 9세기로 편년되는 장판타날 기와로 ‘북한산주’ 또는 ‘북한산성’ 지명과 관련된 것, 치소와 관련된 ‘官’, 선리 유적에서 공급한 ‘受國’과 관련된 명문에 한정되는 특징을 확인하였다. 또한 명문기와를 통하여 아차산성이 신라하대에 北漢山城일 뿐만 아니라 6~7세기대의 북한산주의 치소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아차산성에서는 두 차례의 대대적인 수개축이 확인되는데, 1차 수개축은 나당전쟁기부터 행정 치소의 기능이 강화된 7세기 후반~8세기 전반에 해당하며, 2차 수개축은 명문기와가 사용된 9세기 중반 이후에 중앙에서 이탈하여 지방세력화되는 시기로 파악하였다.

목차

국문초록
1. 서론
2. 아차산성 조사 현황
3. 아차산성 출토 명문기와의 검토
4. 신라의 북한산성 운영 양상 복원
5. 결론
참고문헌

참고문헌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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