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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인숙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저널정보
한국고대사학회 한국고대사연구 한국고대사연구 제93호
발행연도
2019.3
수록면
29 - 59 (31page)
DOI
10.37331/JKAH.2019.03.9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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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신라사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비석인 울진 봉평리 신라비, 포항의 냉수리 신라비와 중성리 신라비의 연구 성과를 본격적으로 논의하기에 앞서 이 비석들이 발견된 포항과 울진 지역의 고고학적 성과를 짚어보기 위해 작성되었다. 이 3개 비석들은 5~6세기 신라 지방에서 발생한 사건 또는 갈등에 신라 중앙이 개입하여 이를 해결한 기록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신라고고학에서는 4~6세기, 경주와 그 외 영남지방에서 보이는 물질문화의 공통점과 차이점이 시간의 경과에 따라 변화하는 양상을 주로 신라 중앙의 영역 확장 과정과 지방 지배 방식의 변화로 설명하고 있다. 신라 중앙의 물질문화는 묘제(신라식목곽묘 → 적석목곽분 → 횡혈식석실분), 신라토기, 금공품 등으로 대표되는데 이것이 지방에서는 출현 또는 확산, 소멸되기도 하는 것이다. 이에 여기서는 발굴조사된 4~6세기 포항과 울진 지역의 묘제와 그 출토품을 대상으로 중앙과 지방 간의 관계를 규명해 온 기왕의 고고학적 연구 성과를 종합적으로 정리해 보았다.
포항 지역에서는 3세기대부터 신라 중앙인 경주와 유사한 무기류가 다량 부장되지만 5세기대에는 다른 지역과는 달리 고총이 조성되지 않는다. 이는 5세기대에 중앙의 영향력이 직접 지배에 가까울 정도로 컸음을 반영한다 하겠다. 그러나 6세기에는 오히려 대형의 횡혈식석실묘가 축조되고 심엽형의 세환이식, 유리제 목걸이 등 신라 위세품이 부장된다. 이 시기까지도 포항은 여전히 중앙에서 관심을 기울인 지역임을 알 수 있다.
울진 지역에서는 읍남리나 덕천리에 고총을 조성하고 위세품을 부장하는 등 신라 중앙의 관심이 컸던 곳임은 분명하다. 경주로부터 상대적으로 원거리에 위치하는 울진 지역은 5세기 이후에야 신라의 간접지배를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덕천리고분군에서 수장급 피장자임을 드러내는 금동관 편이 5세기 말부터 7세기 후엽까지 3차례에 걸쳐서 부장된 점, 읍남리고분군에서 금동 삼엽환두대도 장식과 함께 황남대총 북분 출토품과 유사한 금동 태환이식이 부장된 점을 통해 방증된다.
4~6세기 포항, 울진 지역은 신라와 고구려와의 대치 관계 속에서 지리적으로 신라 중앙에서 중시하였던 지역임에는 틀림없다. 중앙의 지배방식은 포항에서는 중앙의 영향력이 강한 직접 지배, 울진에서는 상대적으로 중앙의 영향력이 약한 간접지배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목차

국문 초록
Ⅰ. 머리말
Ⅱ. 4~6세기 포항의 고분 문화
Ⅲ. 4~6세기 울진의 고분 문화
Ⅳ.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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