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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지학회 온지논총 온지논총 제56호
발행연도
2018.1
수록면
41 - 76 (3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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尤庵 宋時烈(1607~1689)은 李德泗(1581~1636)의 딸과 혼인했다. 宋時烈(1607~1689)은 율곡 李珥(1536~1584)의 도통을 계승하고 기호사림의 도통계승의식을 助長하였다. 李奎象(1727~1799)은 이덕사의 5대손이다. 󰡔幷世才彦錄󰡕의 저자인 이규상은 근자 주목받고 있다. 전반적 정황으로 이덕사와 송시열가문은 여러 세대에 걸쳐 교유하면서서 도통을 계승했다. 이규상의 손자 李源順은 화양구곡에 대한 시를 지었으며, 華陽九曲圖를 그릴 생각을 했다. 이원순의 아들 李馨溥(1791~1851)가 1809년에 「華陽九曲圖」를 그리고 그림에 <題華陽九曲圖>를 썼다. 이 그림에 송시열의 10대손 宋洛憲(1891~1944)은 1924년 ‘華陽九曲圖’라 題目을 적고, 그 조부 宋達洙(1808~1858)가 지은 <華陽九曲次武夷棹歌韻> 10수를 써넣었다. 이 모두 道統을 계승 발현한 결과이다. 혼인으로 맺은 두 가문이 도통의식을 유지하고 후손들이 합작으로 구곡도를 완성한 사례는 처음으로 보인다. 이렇듯 이들은 「華陽九曲圖」를 그리고 거기에 <華陽九曲次武夷棹歌韻>을 追記하여 문학예술작품을 합작완성하였다. 이는 尊周大義와 朱子의 道統意識을 詩와 그림으로 창작계승한 것이다. 현재까지 학계에 보고된 바에 의하면 현존하는 화양구곡도는 2점이다. 權信應(1728~1787)이 그린 <화양구곡도>가 현존하는 최초의 화양구곡도이다. 그 다음이 이형부의 <화양구곡도>이다. 이형부가 그린 <화양구곡도>에는 이형부가 ‘箕山舊邦 崇禎遺民’, 송낙헌이 ‘小巴山人 大明軒 宋洛憲’이라 인장에 새겨서 찍었다. 이를 통해 이들의 존주대의의식과 도통의식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하고 남는다. 이형부의 <화양구곡도>는 전체적으로 바위와 소나무로 구성했다. 바위는 불변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절개와 지조의 상징으로 砥柱石을 염두하고 시에 인용한다. 소나무도 흔히 󰡔논어󰡕 <子罕>편의 “歲寒然後, 知松柏之後彫”에 의거하여 절개와 지조를 대변한다. 이형부는 <화양구곡도>에서 바위와 소나무를 통해 우암이 존주대의의 의리와 존화양이의 지조를 중시했다는 점을 비유적으로 묘사했다고 할 수 있다. 이형부는 <題華陽九曲圖>에 다음과 같은 내용을 담았다. 明나라 황제의 업적과 우암의 崇明意識에 대한 비유, 朱子의 학문자세 강조, 孝宗에 대한 不忘心의 비유적 표현, 우암의 尊周大義意識의 聖地化에 대한 찬양, 중국과 대등한 天藏地秘의 땅, 송시열의 朱子에 대한 흠모심, 제갈 량과 우암의 동격화, 武夷九曲에 없는 신성하고 청정한 仙境, 巴串의 승경에 대한 극대적 예찬 등이다. 이형부는 <題華陽九曲圖>에서 화양구곡 9개 곡과 관련해서 그 내용을 직접 서술하지 않고 비유적 표현을 써서 강조했다. 이런 점이 <화양구곡도>와 <題華陽九曲圖>의 특징이다. 따라서 그 九曲圖史的 의의를 부여할 수 있다. 이렇듯 이형부는 <화양구곡도>와 <題華陽九曲圖>를 통해 존주대의의식과 도통의식을 발현하였으니 그 구곡문학예술사적 의의를 인정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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