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한국사상문화학회 한국사상과 문화 한국사상과 문화 제79호
발행연도
2015.1
수록면
197 - 228 (32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원 간섭기 역관의 활동과 출신성향 그리고 그들이 고려사회에 끼친 영향에 대해 살펴보았다. 역관의 출신성향을 살펴보면, 원종 대에는 천민의 신분이라 하여도 몽고어를 잘하면 역관으로서 활동하였다. 그러나 충렬왕 대에는 대부분 양인이거나 양인이상의 신분이었다. 또 충선왕 대와 충목왕 대에는 몽고어에 능통한 고려인들이 점차 많아지면서 왕의 시종을 비롯한 내료세력도 역관으로 활동하였으며, 공민왕이후에는 남반출신의 역관도 활동하였다. 원 간섭기 역관의 주 활동은 통역이었는데, 사신으로 파견되는 경우도 있었으며, 원의 사정을 정탐하거나 원에 가는 왕과 왕비를 호종(護從) 또는 시종(侍從)하였고, 경우에 따라서는 사적인 일에도 참여하는 등 매우 다양한 활동을 하였다. 원·명교체기에는 통사로서 원과 명에 각각 파견되어 상대국에 대한 동정을 살피고, 당시 고려의 사정과 어려움을 전달하는 활동도 하였다. 역관은 원 간섭기에 점차 부원세력으로 성장하면서 고려사회에 많은 영향을 주었는데, 고려 왕실을 약화시키기도 하고, 자기가 지지하는 세력을 위해 정치에도 적극 간여함으로써 고려의 정치에도 막대한 영향을 끼치었다. 또한 천민출신의 역관이 고위직에까지 오르면서 고려사회의 신분변화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이러한 자신의 지위를 이용하여 경제적 침탈을 자행함으로서 고려사회의 경제적 기반을 무너뜨리기도 했으며, 고려의 풍습을 몽고식으로 바꾸려는 시도도 하였다.

목차

등록된 정보가 없습니다.

참고문헌 (18)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