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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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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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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정보
한국사상문화학회 한국사상과 문화 한국사상과 문화 제26호
발행연도
2004.1
수록면
109 - 132 (2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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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는 고구려의 침공(475)에도 불구하고 수도인 한성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 지켰던 것으로 추측된다. 삼국사기 고구려본기의 장수왕 63년 기사나 백제본기의 문주왕 원년 기사를 보면, 고구려는 백제의 수도인 한성(漢城)을 함락시키고 백제왕을 죽였지만, 싸움이 끝난 직후 다시 돌아갔음을 밝히고 있다. 이는 곧 당시 고구려의 침략 목표가 백제 지역의 한강 유역을 빼앗아 경영하려고 한 것이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이미 백제의 왕도(王都) 지역이 상당 부분 기반 시설이 상실된 마당에 고구려가 당장 이를 중심으로 지방 관부를 설치하고 주둔군을 배치하는 등 영토로 삼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또한 문주(文周)가 신라로 구원병을 청하러 간 사실도 고구려 측에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어서, 전략상 신라 구원군과 직접 대적하지 않을 바에는 한시라도 빨리 한성 주변을 벗어나야 했을 것이다. 고구려로서는 백제와 동맹을 맺은 신라 때문에 지나치게 남하하여 후방을 교란 당하는 것 보다는 신라마저 제압한 이후에 안정되게 영토 확장을 시도하는 쪽을 택하였던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실제로 장수왕의 한성 침공 이후 백제는 고구려에게 해상을 통한 대중국 외교에 대한 견제는 받았지만 서기 6세기초까지 단 한번도 직접적인 공세를 당한 적이 없는 반면, 신라는 소지마립간(479~500) 때에 지속적인 공세를 받았다. 따라서 백제는 고구려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입혔던 게 사실이지만, 한편으로 백제와 신라와 동맹을 맺어 고구려가 지나치게 남하하는 것을 방지함으로써 한강 유역에 대한 영유권을 일정 부분 지속하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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