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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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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한국사상문화학회 한국사상과 문화 한국사상과 문화 제93호
발행연도
2018.1
수록면
229 - 253 (25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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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생관 최북(毫生館 崔北, 1712~1786?)은 조선의 고흐라 불릴 정도로 기이한 행적과 높은 작품성으로 유명한 조선시대 후기의 직업화가다. 그의 작품 <공산무인도(空山無人圖)>, <계류도(溪流圖)>, <처사가도(處士家道)>, <수각산수도(水閣山水圖)>, <풍설야귀인도(風雪夜歸人圖)> 등의 화제시는 주로 초서에 가까운 유려한 행서체로 쓰여 있는데 그림의 주제를 설명할 뿐 아니라 그림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그가 중인의 신분으로서 이처럼 높은 수준의 서예를 성취할 수 있었던 요인은 다음과 같이 추정할 수 있다. 첫째, 그의 학문이다. 당시는 신분제가 허물어지는 과정이어서 교육대상이 확대되었기 때문에 중인이었던 최북도 서당과 서원에서 학문의 기초를 닦았을 가능성이 크다. 이후 그는 원나라 황공망의 화풍과 사상을 접하고 다양한 독서와 여행을 함으로써 학문이 성숙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둘째, 당시 유행하던 중인들의 노장사상과 시 창작활동에 동참함으로써 시와 글씨를 예술로 인식하고 표현하게 되었을 것이다. 셋째, 당시에 정치적으로는 비주류였으나 학문과 예술의 수준이 높았던 사대부들과의 교분을 통해 실학과 양명학 등 학문영역을 넓히고 예술수준을 높일 수 있었을 것이다. 넷째, 당시의 명필이었던 원교 이광사와 표암 강세황 등과의 교분을 통해 서예에 대한 의취를 직접적으로 높일 수 있었을 것이다. 최북의 화제시에 나타난 그의 서예는 온 몸으로 체득한 ‘문기의 드러남’이었고, 학문과 예술이 상통하여 시·서·화가 하나로 어우러진‘통의 경지’에 이른 예술적 발현이었으며, ‘보는 서예’를 추구하는 현대서예의 선구였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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