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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정보
저널정보
포은학회 포은학연구 포은학연구 제16권
발행연도
2015.1
수록면
51 - 81 (31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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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녹생은 고려후기 전라도 담양 출신으로 과거에 합격한 신진사대부이다. 그는 우왕대 북원 사신 영접 사건으로 사망할 때까지 전형적인 문신 관료의 삶을 살았다. 그의 출세 배경은 공민왕의 후원 때문이며, 사망 원인은 권문세가들의 권력 장악의도에서 기인한다. 이인임 정권은 정치적 본보기로 신진사대부 중에서 가장 원로격인 전녹생 등을 선택하였다. 특히 그의 사망에는 최영이 지녔던 성격과 과거 감정적 요인이 같이 작용하였다. 전녹생은 1340년 지공거 김영돈, 동지공거 안축 아래에서 과거 시험에 합격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추정은 이후 정치도감에서의 활약과 김영돈의 구원 노력에서 찾을 수 있다. 그의 정치도감 활동은 이후 그의 현실개혁 의지에 힘을 보탰을 것이다. 그의 활동은 염철별감의 폐해나 전라도 연호군 등의 문제 제기에서 찾을 수 있다. 이런 활동은 그의 강직하고 민생에 대한 경세의식에서 나온 것이다. 다만 전녹생은 이를 체계화하여 개혁안으로 제시하지 못하였다는 점에서, 조준이나 정도전 등과는 차이가 있다. 즉 그는 관료로서 직무를 다하려 하였지만, 신진사대부의 중심인물로 부각되지는 못하였다. 전녹생의 죽음은 18세기에 ‘절의’로 평가되었고, 그의 문집인 󰡔야은일고󰡕가 발간되었다. 그에 대한 ‘절의’ 평가는 성리학적 가치에서 나온 문명적 화이론을 바탕에 두고 있지만, 전녹생은 현실적 힘에 의해 외교문제를 바라보았을 것이다. 그는 새로운 법과 제도를 통한 법가적 통치와 다른 지향성을 지녔으며, 유행하던 ‘은일’에 대한 소망도 있었다. 그는 개인적 성격으로 인하여 민생을 위한 경세적 지향을 추구하였다. 그렇지만 그는 신진사대부의 정치세력화에 성공하지 못했기 때문에 최영 등에 의해 죽게 되었던 것이다. 결국 전녹생은 고려말 신진사대부로서의 경세적 성격을 지닌 전형적 관료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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