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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민족문화연구 민족문화연구 제45호
발행연도
2006.1
수록면
185 - 224 (4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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正祖 임금은 ‘학문의 요체인 格物致知도 그 바탕은 문자에 있다’고 언급하면서 文字 연구의 중요성을 강조하였으며, 1792년(정조16년)에 奎章全韻이 완성되자 여러 신하들에게 이 책의 교정을 명하면서 아울러 문자학 제반 문제에 대한 논의를 담고 있는 文字策問을 신하들에게 내려 토론을 벌였다.본고는 이러한 정조의 문자책문 및 이에 대한 李德懋, 柳得恭, 朴齊家, 李書九, 尹行恁의 對策文을 연구 대상으로 삼아, 여기서 언급된 文자와 字자의 개념, 六書, 字體 등의 문자학 관련 여러 설에 대해 어떠한 논의를 진행하였는지 검토하였다. 이를 통해, 당시의 문자학 연구의 의의를 살펴보았으며, 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첫째, 조선후기에 이르러 진행된 학풍의 다양화개방화 양상의 전개에 따라 性理學 위주의 학문 풍토에서 소외받았던 小學에 대한 중요성이 대두되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는 經學의 부용물로서의 역할을 주로 수행해 왔던 소학이 점차로 독립적 학문 영역으로 자리 잡아 나가는 양상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둘째, 문자책문 및 신하들의 대책문에서는 주로 許愼, 鄭樵, 顧炎武, 戴震 등 漢宋淸을 대표하는 학자들의 문자학설에 대해 토론하였는데, 이를 통해 당시의 조선 학계에서도 중국의 역대 문자학사에서 논의되었던 주요 문제를 두루 논의하고 있었음을 볼 수 있었다. 셋째, 諸臣들의 문자학 제설에 대한 견해가 매우 독창적이거나 淸의 최신 이론을 많이 수용하였다고 평가할 수는 없지만, 이들은 문자학에 대한 일정 정도의 이해를 가지고 있었으며 기존의 연구 성과에 대한 나름대로의 평가를 내릴 정도의 수준을 가지고 있었다.넷째, 정조의 질문 및 신하들의 답변 양상을 살펴보면, 대체로 기존 학설을 인용하거나 부연 설명하는 경우가 많았음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종종 자신의 새로운 견해를 제시하기도 하는 등, 기존의 학설을 묵수하지 않고 비판적으로 이해하려는 시도가 진행되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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