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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동아대학교 석당학술원 석당논총 석당논총 제65호
발행연도
2016.1
수록면
225 - 259 (35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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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19세기 후반 이후 급격하게 확산된 관우 숭배가 한말 식민지기를 거치면서 쇠퇴해가는 현상에 주목하여 그 변화와 의미를 살펴보았다. 임진왜란 당시 조선에 들어온 관우 신앙은 19세기 후반 고종 연간에 그 열기가 고조되어 크게 확산되었다. 국가 의례로서 국가의 주도 아래 거행되었던 관우 의례는 식민지기 민간신앙으로 지속되다가 급속히 사라진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한말 식민지기 관우 신앙이 더 이상 국가의 비호를 받지 못하게 되자, 단순히 의례를 후원하는 관우숭배단체들이 관성교라는 종교조직을 만들어 관우 의례를 주관하게 된 것과 연관된다. 한편 중국 중심의 동아시아 국제질서는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거치면서 중국을 배경으로 한 역사적 문화적 상징이 더 이상 호소력을 갖기 어려웠다. 대신 내셔널리즘에 기초한 민족 종교들이 확산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빠른 시간 안에 공공 의례의 또 다른 중심축으로까지 부상했던 관우 숭배는 한말에 이미 엘리트들의 희구를 뒷받침하는 새로운 구심점의 자리에서 밀려났다. 이렇듯 관우 숭배는 강력한 후원자를 상실하면서 기독교 등 서구에서 수용한 종교들과의 경쟁에서도 더 이상 지지 기반을 유지할 수 없었다. 더하여 관우 숭배를 바라보는 근대적 시선도 식민지기의 운명을 좌우한 현상이다. 각종 대중 매체, 특히 언론은 관우 신앙을 미신적인 것으로 간주하여 비판하였다. 식민지기 지식인들도 마찬가지로 1930년대 일본의 미신타파정책과 궤를 같이하여 민간신앙과 흡수되어 있는 관우 신앙을 미신적인 것으로 간주하였고, 사대주의의 산물로 인식하였다. 특히 기독교인들은 관우 신앙을 미신적인 것으로 타파해야 할 대상으로 여기고, 근대로 가는 데 있어 배척해야 할 문화적 유산으로 인식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기독교에 의한 미신타파는 단순히 종교상의 문제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근대화로 가는 첫 길목으로 여긴 것이다. 이러한 사회 환경의 변화와 관우 신앙에 대한 시선들은 관우 신앙이 사라지는 배경으로 작용하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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