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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대동문화연구 대동문화연구 제71호
발행연도
2010.1
수록면
295 - 327 (33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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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조선의 1920년대 초반은 근대적인 예술론이 시작되는 중요한 시기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학계에서는 김동인, 염상섭 등의 『창조』와 『폐허』, 『백조』등의 문예동인지들의 담당자들에 비해, 비슷한 시기 미술론을 중심으로 근대적인 예술론을 전개하고자 했던 김환, 김찬영 등에 대한 관심은 많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은 분명 미들의 예술론의 전개가 서구 예술사조의 수입과 소개라는 것으로 미술역할이 국한되어 과소평가된 결과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한 가지 중요하게 지적되어야 할 지점은 미들의 예술비평이 적어도 서구의 예술 사조에 대한 단편적인 지식의 나열이 아니라 이것을 나름대로 이해하고 자기화하려는 노력의 소산이었다는 사실일 것이다. 본고는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하여, 동경미술학교를 졸업한 조선의 근대 화가이자, 『폐허』, 『창조』, 『영대』의 동인으로 활발한 예술비평을 전개했던 김찬영(필명 金惟邦)을 중심으로 그의 작업이 어떻게 근대의 예술 미학의 형성에 이르는 단초가 될 수 있었는가를 따져보고자 하였다. 김찬영은 1920년대 초 전근대와 근대의 충돌, 예술에 대한 이해와 몰이해 사이에서 고민하면서, 미술 작품을 창작하는 것보다는 당시의 예술가들이 처한 예술에 대한 몰이해를 극복하는 것이 먼저라고 판단하였다. 이는 그가 실제로 회화작업보다는 예술비평에 힘을 쏟은 근거가 된다. 그는 특히 ‘자연주의’라는 사조를 회화적인 개념으로 대상과 똑같이 그리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이러한 자연주의적 객관을 넘어서는 사조로 주관적 감상을 중시하는 인상주의를 제시하고 또한 이를 넘어 입체파, 미래파를 설명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이는 마치 서구의 예술사조를 시대적으로 설명하고자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실제로는 사물을 보이는 대로 그리는 회화라는 대중의 낡은 인식을 깨고 눈에 보이지 않는 감정이나 사물의 이면을 중시하는 것이 근대 예술의 핵심적인 부분을 설명하기 위한 방법론적 접근이었던 것이다. 이는 비슷한 시기 전개된 김환의 미술론이 미술을 학술과 유사한 것으로 그 역할을 축소하는 한계를 노출한 것과는 사뭇 다른, 보다 미술, 나아가 예술만의 독자적 영역을 확보하기 위한 활동으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즉 김찬영의 예술비평은 작가의 인식과 표현, 비평 등의 예술을 둘러싼 여러 측면들을 다루면서 문학과 미술 사이의 교류를 통해 조선에서 독자적이고 근대적인 예술미학을 형성하고자 했던 최초의 노력으로 의미 있게 평가되어야 할 것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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